의협을 위한 세레나데

2024-11-28

120년 역사를 지닌 의사 14만 명의 단체,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취임 6개월 만에 회장직을 상실했다. 최단기간 탄핵된 사례가 되었다. 회장 탄핵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나 탄핵 시도는 그간 수차례 반복되어왔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회원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고도 탄핵이 흔한 일이 되어 간다는 것은 고민되는 현상이다. 다시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 정치도 그렇다.

의협, 의료개혁 주체 역할 못해

객관적 데이터와 정책 생산 부재

꼰대 의협이라는 비판 수용하고

문호 넓혀 의사 대표성 확장해야

모든 이익단체가 그러하듯 의협은 회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환자 진료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회원들은 의협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금의 의정 갈등 상황 속에 지리멸렬한 의협의 모습 때문이다. 사실 의협은 태동부터 조직적 함의를 가져가기가 지난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의협을 구성하고 있는 개원의, 봉직의, 대학교수, 전공의 등은 직역 간,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는 모든 직역의 현안들을 정책적으로 조율하기도, 만족시키기도 어렵다. 정부와의 대화 창구인 의협과 협상을 진행하여도 직역 간 입장의 차이가 극명한 사안의 경우, 의료계의 합의를 도출 해내기가 난감한 배경이다.

의정 갈등 시마다 많은 이들이 의협의 쇄신 필요성을 주창한다. 의사들의 유일한 법정 단체지만 한정된 인적 자원과 비효율적 운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원의 중심이라는 비판 속에 의료계의 대표성도 뚜렷하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료정책을 위상만큼 생산하지도 못했다. 모두가 지쳐가는 의정 갈등 속에 진정한 의료개혁의 주체세력이라는 사회적 평가는 요원하다. 듣기 싫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모름지기 개혁은 당위성에서 구현되지 않는다. 개혁을 실행할 주체와 우호세력이 명확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의료개혁이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니 그러하고, 의협의 혁신도 마찬가지이다. 그간의 글에서 누누이 피력했던 의사의 직업적 정체성은 의과학자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과학적 근거 속에 환자를 진료하는 직업군이다. 의사가 주관적이며 획일적인 정부 의료정책과 싸우겠다면서 객관적 의료 데이터를 무기로 하지 않고 단지 여론전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나서면 승산 없다. 더군다나 국민의 여론을 차갑게 하는 막말 사태는 부끄럽다. 현 시기 의협 비대위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필수의료 부족이라는 사회적 과제 속에 정부와 의사 간의 진단과 해법은 확연하게 다르다. 현 시기 의협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차별적인 의대 정원 확대가 왜 잘못된 것인지 국민을 설득할 객관적 명분은 확보하고 있었는지 성찰할 일이다.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진행된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앞에 선배 의사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전공의 학생들에게 어떠한 헌신을 보여줬는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의사협회는 의료정책 결정에 대한 중요한 이해당사자로서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국가의 의료정책은 사전에 숙련과 소통의 과정을 거치며 의사협회의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세다. 미국의 보건 의료정책에서 의사협회의 역할은 회원의 권익과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정책을 옹호하고 지지하는데 이를 ‘보건 정치’라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의 의사협회는 의대생에게도 대의원 자격과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의료계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의대생은 가입이 불가하며 전체 회원 중 약 1만5000명으로 10%에 달하는 전공의들에겐 의협 중앙대의원회 250명의 정수 중 2%만 배정돼 있다. 대의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이쯤 되면 전공의들에게서 의협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올만하다. 의협의 쇄신은 대의원 구성과 선출 방식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의대생들에게도 가입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국민도 의사도 모두 안다. 대한민국 의료는 거대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공백을 메꾸면서도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미래지향적 의료정책의 입안을 위해 의협은 연공서열 중심의 구시대적 질서를 탈피해야 한다.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이 자체 정화 능력을 상실하면 외부에 의해 조직의 명운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의료개혁을 위해선 의사협회를 명실상부하게 의사들의 단일한 대표조직이자 의사결정 구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익적 정책 생산의 주체로 변신하는 것, 나아가 객관화된 데이터로 대정부, 대국민 설득 창구로서 그 기능을 다 하게 하는 것이다. 꼰대 의협 그만하자. 의협을 혁신하면 국민도 의사를 지지한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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