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렌틸, 퀴노아, 카무트까지는 들어봤다. 그런데 ‘파로’는 뭐지? 최근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곡물이 파로다. 홈쇼핑에 나오기만 하면 매진되기 일쑤고, 백화점 식품관이나 할인점 곡물 코너에서도 그 자리를 넓혀간다. 마켓컬리에서 2월 한 달간 판매된 파로의 양은 지난해 12월에 비해 70%나 늘었다. SSG닷컴 역시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파로 매출이 두 자릿수 올랐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파로를 활용한 레시피를 소개하는 영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네이버 키워드 도구에서 최근 한 달간 검색량은 12만건 이상으로, 다른 곡물들에 비해 2~3배 이상 많다.
파로 열풍이 지펴진 것은 올해 초다. 방송인이자 모델인 홍진경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파로를 소개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방송에서 파로를 섞어 밥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며 체중이 7㎏가량 빠졌다고 소개했다. 한가인, 손태영 등 다른 연예인들도 이를 즐겨 먹는 영상을 공개하며 관심을 끌었다.
파로, 어디서 온 곡물일까?
파로(farro)는 지중해와 근동지역을 중심으로 고대에서부터 재배되어온 밀을 일컫는다. 엠머(emmer), 스펠트(spelt), 아인콘(einkorn) 등을 통칭하는 것인데 이 중 이탈리아에서 많이 생산되는 엠머를 주로 지칭한다. 로마제국의 군대가 주식으로 먹었다고 알려진 파로는 일반적인 밀과 비교했을 때 단백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과 같은 영양소, 식이섬유가 많으며 글루텐은 적은 편이다. 요리도 간편하다. 쌀과 섞어 밥을 지으면 된다. 차지고 쫄깃한 식감이 있는 데다 이물감이 크지 않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파로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통곡물 형태뿐 아니라 다양한 가공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도 쏟아지고 있다.

단백질 함량 높고 글루텐 적어
밥 지을 때 섞으면 차지고 쫄깃
“보리·귀리 등도 검증된 곡물”
파로 분말을 활용한 빵이나 파스타부터 시리얼, 누룽지까지 나온다. 유통업계에서는 렌틸, 퀴노아, 카무트 등에 이어 차세대 ‘슈퍼 곡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본다.
건강에 좋고 이색적인 맛과 식감을 가진 식재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언제나 뜨겁다. 특히 최근에는 혈당 관리, 저속 노화 등이 소비자들 사이에 주된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일상식으로 먹는 잡곡에 관한 관심이 높다. 정제 탄수화물이 건강에 나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단백질 함량의 정도나 성분의 특성에 집중하는 식이다.
‘저속 노화’ 필수가 되고 있는 슈퍼 곡물
미국 건강전문지 ‘헬스’에서 세계 5대 슈퍼푸드로 선정된 렌틸은 10여년 전 가수 이효리가 블로그에서 소박한 아침식사 재료로 소개해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국내에 알려졌다. 초창기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색다른 곡물 정도로 인식됐으나 지금은 저속 노화에 필수적인 메뉴로 자리 잡았다.
남미의 곡물 아마란스, 에티오피아의 주식 테프는 풍부한 식이섬유 덕분에 한때 다이어트 열풍을 타고 부상했다. 한동안 주춤하다 최근 들어 혈당 관리에 좋다고 소문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년 전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퀴노아와 카무트의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일찌감치 슈퍼푸드로 인정받으며 미국 항공우주국이 우주비행사 식량으로 채택하기도 한 퀴노아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밥을 지을 때 함께 넣기도 하고 샐러드 재료로도 많이 활용한다.
2015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건강한 식품 50가지에 포함된 카무트는 쫄깃하고 고소한 식감이 파로와 비슷하며 단백질과 셀레늄이 풍부한 편이다. 지난해 방송인 최화정이 “다이어트할 때 항상 먹는다”고 밝히며 다양한 레시피를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카무트는 원래 곡물의 명칭이 아니라 브랜드명이다. 곡물의 이름은 고대 이집트부터 재배된 ‘호라산밀’(khorasan wheat)이다. 종자의 순수성과 품질을 관리하는 미국 브랜드 ‘카무트(Kamut)’가 생산·판매를 주도하면서 브랜드명이 일반명사화됐다. SSG닷컴 상품개발팀 윤정원 MD는 “과거에는 단순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곡물을 찾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혈당 관리나 소화 여부 등 세부적 기능이 어떤지, 지속 가능한 생산 방식인지까지 소비자들의 관심사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로나 카무트, 퀴노아 등에 따라붙는 설명에 ‘고대 곡물’(ancient grains)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된다. 고대 곡물은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십수년 전부터 큰 관심을 끌어왔는데 귀리나 수수, 테프, 기장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미국통곡물협회(WGC)에 따르면 ‘고대 곡물’은 현대적인 개량을 통해 변형되지 않은, 예로부터 이어진 유전적 순수성을 갖고 있는 곡물이다. 자연에 더 가깝고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로 꼽히는데 전문가들은 통곡물을 폭넓게 일컫는 용어로 보기도 한다.
동서대 식품영양학과 홍경희 교수(한국영양학회 홍보이사)는 “다양한 통곡물을 골고루 먹는 것이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인들에게 바람직한 식단”이라면서 “특정 식품의 효과를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보리나 귀리, 콩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곡들도 혈당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검증된 곡물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