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과 함께 하는 ‘2025 이집트 문명탐사’ 참가자들의 답사기를 싣습니다. 지난 1월 이티원 주최,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후원으로 진행된 답사에서, 참가기를 제출한 신청자들의 작품 중 4편을 추렸습니다. 후마니타스연구소.

이집트를 좋아한지는 오래되었다.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 세대는 아니라 아쉽지만, 여전히 영화 미이라의 몇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또 이집트 관련 전시가 있으면 항상 챙겨 갔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만의 독특함은 매력적이니까! 고대 이집트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볼만한 책도 영상도 부족하여 답답해하던 중 곽민수 소장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장님과 함께 가는 탐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대 이집트를 알아가는데 이보다 더 빠르고 좋은 길은 없으리라 생각하여 바로 탐사를 신청하였다.
탐사는 이름난 유적지부터 자유여행으로는 가기 힘든 곳, 이제 막 문을 연 박물관까지 다녀오는 꽉 찬 일정이었다. 지역으로는 북쪽의 카이로부터 남쪽 아부심벨까지였다. 쓱 훑은 것이 아닌, 가능한 한 직접 들어가 보았고, 소장님의 심도있는 설명까지 곁들여져 단숨에 고대 이집트에 대한 이해도가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대 이집트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또 박물관도 무려 여섯 곳이나 갔는데, 유적지를 먼저 돌아보고 박물관에서 유물을 마주하니, 마치 내가 발굴한 것처럼 반갑고 퍼즐 조각을 맞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다녀온 많은 곳 중 내게 인상 깊었던 유적지와 지금까지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유물을 소개하고 싶다. 유적지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셰이크 아브드 엘 쿠르나이다. 이곳엔 18, 19왕조 때의 것으로 보이는 개인 공동묘지가 있는데, 무덤마다 흥미로운 장면이 가득한 벽화를 볼 수 있다. 벽화로 무덤 주인이 생전에 맡았던 일을 표현한 것이 마치 사진을 찍어 둔 듯하다. 여기서 사람들의 차림새와 공예품, 일하는 모습,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웃음을 주는 장면도 있으니 꼭 찾아보길 바란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 세련미를 뽐내는 벽화들도 있고, 사망 후에 이루어지는 행진과 장례 의식 장면도 있어 고대 이집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던 곳이라 기억에 남는다. 눈여겨보아야 할 유물로는 카프라의 좌상을 들고 싶다. 그의 피라미드 하안신전에서 발견된 것으로 목 뒤에 호루스가 그를 수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석상은 카프라의 실제 모습이 아닌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겠지만 조각의 생생함이 마치 사람 같아서 그를 만나 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강인한 파라오로 존재하며 아버지 못지않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운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본다면 감동이 배가 될 것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고민 끝에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에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을까만은)하트셉수트의 미라와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그녀의 은은한 미소 띤 조각상, 데이르 엘 바흐리에 있는 장례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에 그녀가 세운 오벨리스크도, 한 사람을 알아간다 생각하며 보기 참 좋은 유물과 유적지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대 이집트의 과학 기술, 세계 7대 미스테리인 대피라미드는 어떻게 지었을까-와 같은 생각을 나 역시도 했었다. 하지만 더 많이 알아갈수록 이는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시행착오와 대를 이어 전수된 노하우로 이룩한 문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 대한 나의 감상이 신비롭다기보다 시공간적으로는 매우 멀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고 바뀌었다. 피라미드나 미라, 신전 등을 만드는 일은 분명 수고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지금의 우리와는 생각과 믿음의 방향이 다를 뿐이지 않을까. 왕들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3시간을 걸어 출근하던 데이르 엘 메디나의 석공들은 주 5일 같은 곳에 출근하는 나와 다르지 않고, 사랑하는 이의 제사상이 영원히 마르지 않길 바라던 고대 이집트인들과 지난 설 명절 부모님과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차가 밀릴 것을 알지만 고향으로 향했던 우리와 겹쳐 보였다. 그래서 반가웠고 이렇게 가까워짐에 기뻤다. 또 그들이 남긴 정성스러운 유물과 유적지가 그들의 바람대로 안전히 보전되기를 바란다.
이집트에 간다고 하였을 때 왜 하필 이집트냐고 묻는 이들이 꽤 있었다. 볼 게 많기로는 다른 곳도 많지 않냐고 했다. 하지만 이집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반드시 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계적인 박물관이라도 보여 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이집트 전역에서 찾을 수 있는 람세스 2세의 근면한 자기 사랑, 카르낙 신전에 켜켜이 쌓인 1500년의 건축사, 필라에섬의 따뜻한 오후와 룩소르 신전의 그윽한 밤이 그것이다. 또 유물과 유적지에 현대 이집트가 뒤섞여 이곳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도로에 신호등이 없어 처음엔 길 건너기를 주저했지만, 슬그머니 몸을 내밀면 짧은 배려를 해주는 운전자들, 시장과 유적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절한 경찰들, 우린 친구잖아 좋은 거래를 했잖아 웃으며 음료를 대접하는 가게 사장님들. 그래서 난 다시 한번 이집트에 가고 싶다. 그때도 경향탐사대가 되어 곽민수 소장님과 함께 갈 거다. 내게 그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더 많이 보고 듣고 기록하고 싶다. 일정 내내 쉼 없이 다녔어도 볼 게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이 솔직히 기쁘기까지 하다. 긴 역사만큼 끝나지 않을 커다란 즐거움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인생 여행 맞아요, 행복했습니다! 25년 경향 2차 정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