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국민은 계몽이나 아부의 대상이 아니다

2025-03-12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긴 대표적인 독재자가 히틀러였다. 그는 국민을 무지한 존재로 여겼다. 조종 가능하다고 했다. 또 쉽게 망각하는 존재였다. 반복적이고 간결한 메시지로 선전(프로파간다)하면 조작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인간의 존엄성은 안중에 없었다. 사회분열은 관심 밖이었다.

우리 역사에 갑자사화가 있다. 1504년, 연산군 10년이었다.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폐출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을 때 찬성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복수가 이 사화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폐비 윤씨가 사사된 사건은 22년이 지난 일로 사화의 직접 원인이 아니었다. 근저에는 자신의 절대왕정 구축에 걸림돌이었던 사간헌과 사헌부 등 감찰기관을 무력화하고 깐깐한 비판 세력이었던 선비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조선일보 주필은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윤 대통령의 실상을 압축해 고발했다. “스스로 자폭했다”.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다”. “사려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다” 등 대통령의 자격 상실을 요건을 적나라하게 열거했다. 민주당의 몇 개월 전 계엄령 선포 주장을 괴담으로 비판한 것도 사과했다.

이러던 조선일보가 돌변했다. 지난 3월 5일부터 3일간 보도한 105주년 특집 기사는 기획 의도를 의심케 했다. “2030 세대 ‘우린 86 부모 세대와 달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갈등을 과할 정도로 부각시켰다. 4050 세대보다 보수 성향 지수가 높고, 계엄·탄핵 시각도 온도차가 뚜렷하다고 보도했다. 반중(反中)의식은 70대 이상보다 강하다고 했다.

‘청년 70%가 비상계엄 선포에 부정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도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2030 세대 4명만의 인터뷰를 집중보도했다. 이들의 사진을 같은 날 한 신문에 두 번 싣는 파격 편집까지 했다. 최소한의 균형조차 없었다. 결과적으로 2030세대 70% 여론은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항목설정도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민주주의가 항상 낫다’. ‘상황에 따라선 독재가 낫다’. ‘민주주의나 독재나 상관 없다’는 항목에 답하도록 했다. ‘독재가 낫다’거나 ‘상관 없다’는 두 항목에 답한 응답자가 20대와 30대가 각각 33%와 36%였다. 전체 평균 27%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원인과 해결책 제시는 미흡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비율이 이 정도면 심각한 문제다. 이런 현상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기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2030 세대의 반중(反中)의식을 부각시킨 점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강의실과 사회서···내가 볼 혜택, 중국인이 뺏는 느낌’이라고 크게 보도 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혐한, 반한 여론이 일어났을 때를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주류 언론은 과도하게 수용자를 계몽하려 들거나 특정 집단만을 부각해 아부성 기사라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된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도 해야 한다. 이번 조선일보의 창간 특집 기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환호할 기사로 넘쳤다. 조선일보 보도 태도가 계엄선포 직후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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