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비아 토마토는 3일 만에 물러지기 시작하는 성질이 있어 그동안 해외 수출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천연 바이오 기반 나노코팅제를 바른 결과 14일까지 싱싱한 상태를 유지해 동남아로 첫 수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19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 내 한 연구실에서는 농산물의 신선도를 길게 유지해주는 최적의 코팅제 배합 성분을 찾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작은 금 덩어리가 나노코팅제 성분이 함유된 액체에 담가져 있었다. 화학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의 속성을 이용해 농산물과 코팅제가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선행 연구를 하는 것이다. 나노코팅제는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 입자를 사용해 대상 표면에 얇은 보호막을 형성하는 코팅 물질을 말한다. 이 코팅막은 기존 코팅제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특수 기능을 표면에 부여하는 기능을 발휘해 채소나 과일 등 농산품의 수명을 2배 이상 늘려준다.

연구소를 이끄는 에코기어는 천연 바이오 소재로 구성된 식용 나노코팅제를 개발, 제조하는 친환경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이다. 이화여대 화학교육과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박지훈 대표는 2021년부터 친환경 나노코팅 기술을 연구하며 사업화에 나섰다. 사업 초기에는 안경이나 창문의 김 서림 방지 코팅제에 주목했지만 지난해부터 농산물 시장 내 친환경 코팅 기술 도입에 힘쓰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 천연 바이오 소재 기반의 나노코팅제를 농산업에 적용한 것은 에코기어가 최초”라며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적인 농업 강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런 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했지만 국내는 이제 막 도입 단계라 향후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린바이오로 통칭되는 천연 바이오 기술은 천연 물질이 가지고 있는 생리 활성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그동안 한국에서는 의약품이나 화장품·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는 데 주로 쓰여왔다. 에코기어는 수백, 수천 가지 천연 물질에서 원하는 유효 성분만을 고농도로 추출해 나노코팅제를 제조한다. 특히 아임계수(끓는점 이상이면서 임계점보다는 낮은 온도 상태로 높은 압력 하에 있는 물) 추출 기술을 통해 유익한 성분을 뽑아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박 대표는 “다른 액체 없이 물만 가지고 성분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공법도 친환경적”이라며 “농약이나 방부제와 달리 나노코팅제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강조했다.
감귤을 도포하는 나노코팅제의 경우 계피에서 뽑아낸 성분 비중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이 코팅제 냄새를 직접 맡으니 계피 향이 났다. 천연 성분 기반의 나노코팅층에는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 원료를 포함해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무기질, 면역 강화 기능 원료까지 추가할 수 있다. 토마토나 귤은 물론 참외·딸기 등의 소비기한을 늘릴 수 있는 데다 바나나같이 쉽게 갈변되는 과일의 경우 검게 변하는 기간을 늦추는 효과도 있다. 에코기어는 제주도에 나노코팅제 공장을 두고 있으며 지역농협을 비롯한 국내 대형 유통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감귤 수확 철을 맞아 최근에는 귤 농가의 관심을 한껏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에코기어에 따르면 귤 선도 유지제 ‘푸릇팅’을 적용한 결과 과실 부패율이 최대 7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푸릇팅을 뿌리면 수확 직후 귤에 침투해 있던 곰팡이균이 사멸되기 때문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감귤 1톤당 100만 원 이상의 손실 방지 효과가 있다는 에코기어 측 설명이다.
농업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식품 보존 코팅 기술 시장이 일찍이 성장해 왔다.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 어필사이언스로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의 투자를 유치하며 주목 받았다. 이 기업은 농작물의 수분 손실과 산화를 막아주는 분말 형태의 특수 코팅제를 제조한다. 특정 과일의 씨앗과 껍질에서 원료를 추출해 인체에 무해하고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이 같은 첨단 그린바이오 기술이 농산업 저변으로 확대될수록 음식물 쓰레기 문제도 점차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해 발표한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만 10억 500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했다. 소비 가능한 음식물 중 무려 19%가 유통기한 문제 등으로 버려진다. 폐기된 농산물은 매립지에서 썩는 동안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가스를 적지 않게 내뿜어 기후위기의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식품 손실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연간 9400억 달러(약 1380조 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유엔은 2030년까지 유통 및 소비자 수준에서 식품 손실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식품 손실을 줄이는 친환경 기술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한다”면서 “국내에서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작물 폐기 문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