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 결과 위한 ‘프롬프트형 언어’ 홍수…우린 다정한 언어가 필요해

2025-04-05

“한국인의 93%는 챗GPT를 제대로 못 쓰고 있다. 챗GPT를 500%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프롬프트는!”으로 시작하는 콘텐츠를 최근 들어 329번 정도 본 것 같다. 내 알고리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주간 챗GPT 사용자가 4억명, 한국에서만 500만명. 이미 수많은 사람의 피드에 ‘프롬프트 꿀팁’이 침투 중일 것이다.

원래 프롬프트는 무대에서 배우에게 대사를 상기시켜주는 말이나 신호를 의미했다. 이제는 인공지능(AI)과 소통하기 위한 텍스트 명령어나 질문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AI와의 협업 시대, 프롬프트는 우리가 새롭게 배워야 할 언어다. 원하는 고품질의 답과 결과를 더 정확하게 이끌어내는 ‘프롬프트 꿀팁’은 지금 가장 뜨거운 학습 도구다. 사람들이 더 잘하고자 하는 자기소개서 작성 등 작업에 축적된 노하우와 창의성이 결합되며, 이를 기반으로 한 프롬프트 언어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지금 나의 알고리즘은 ‘일 잘하는 사람들이 쓰는 프롬프트’ 콘텐츠를 추천한다. 프롬프트를 잘 사용하면 자료 조사, 아이디에이션, 보고서의 능률과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말한다. 고효율 프롬프트의 핵심은 명료함. 생성형 AI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요구 사항을 상세히 적고, 마지막으로 AI가 스스로 결과물을 검토할 것을 명령한다. 프롬프트 언어로 쓰면 이렇다. “너는 업계 최고 수준의 컨설턴트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이 분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해결책과 근거를 제시해주되 그 해결책에 1~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겨봐.”

묘하게도 최적의 결과를 위해 ‘프롬프트형 언어’를 계속 쓰다 보면 유능감이나 효능감 대신 죄책감과 위화감을 느낀다. 상대가 친구나 동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니. 나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상대는 정서가 없는 기계일지라도 나는 기계가 아니다. 더 명료한 프롬프트로 더 나은 결과를 내지만 이 과정에서 기계의 논리에 굴복한 나는 좀 초라해진다. ‘이건 별로야. 이렇게 해. 다시. 출처 밝혀’라고 명령과 지시를 반복할수록 내 언어 정서는 바싹 메마른다.

효율과 속도를 목표로 하는 프롬프트라는 새로운 대화 형식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속도를 무기로 한 변화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얼마나 빠르게 바꾸는지는 쇼트폼 콘텐츠의 위력으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기승전결이 축약된 쇼트폼 콘텐츠에 이토록 쉽게 중독된 우리가 결과 지향적인 ‘프롬프트형 언어’에 침식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쇼트폼이 서사의 상실을 부추긴 것처럼 프롬프트가 우리 대화의 변질을 초래할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이 인간성을 훼손한다는 우려는 늘 있었다. 편지가 e메일로 대체될 때도, 카톡이 등장할 때도 그랬다. 그래도 기술력은 늘 인간력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시대와 기계가 자꾸 효율과 속도를 강조할수록, 여백과 모호함 속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더 잘 읽어내는 인간력이 빛을 발할 것이다. 기계가 잘 알아듣게 말하는 기술적 언어 습관을 익혔다면 이제 다시 인간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민감성을 복구할 차례다.

인간력을 키우는 데는 획기적인 꿀팁이 없다. 그저 더 세밀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다정과 여유가 필요할 뿐이다. 친구의 기쁘거나 슬픈 눈동자, 동료의 설레거나 두려운 입꼬리를 더 잘 알아차리는 능력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유일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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