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은 ‘분노의 작전 타임’으로 유명하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선수들을 꾸짖기도, 격려하기도 하며 목 터져라 전술을 설명한다. 이번 시즌에는 전주원 수석코치도 작전 타임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인 아시아쿼터 선수들에게 위 감독의 지시를 설명하는 통역사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농구의 전설로 불리는 전 코치는 이번 시즌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부터 WKBL에서 뛰는 일본인 아시아쿼터 선수들을 위해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는 대신 일본어에 능통한 전 코치에게 통역 업무를 일임했다. 전 코치는 지난달에는 수훈선수로 선정된 미야사카 모모나(30)의 인터뷰를 통역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동석하기도 했다.
전 코치는 일본에서 유학하거나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선수 시절 일본에서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뒤 두 달간 재활 훈련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 코치의 표현에 따르면 현지에서의 소통을 위해 습득한 ‘막일어(막 뱉는 일본어)’였다.

생활 일본어 실력을 갖춘 전 코치이지만 현장에서의 통역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한국과는 다른 일본의 전문 농구 용어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전 코치는 “처음에는 일본인 선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일본 농구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전 코치는 일본인 선수들과 언어 이상의 소통을 주고받고 있다. 오히려 전문 통역사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거친 베테랑 농구인이 통역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 코치는 “저는 위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감독님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라며 “그래서 작전타임 때에도 감독님의 지시를 바로바로 통역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 코치는 일본인 선수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기 외적으로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선수의 몸 상태를 트레이너에게 전달하고 선수와 감독 사이의 면담을 돕는 등 초반에는 사실상의 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만큼 선수들과의 유대감도 깊어졌다.
전 코치는 “생활이나 농구에 관한 어려움이나 불편함은 일본인 선수들이 제게 물어보고 선수들끼리는 통역 없이 대화한다”라며 “자기들끼리 핸드폰 번역기를 통해서 대화하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서로 더 빨리 친해지고 일본인 선수들의 한국어도 조금씩 느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본 리그에서 주로 식스맨으로 활약했던 모모나와 스나가와 나츠키(29)는 우리은행에서 주요한 득점 자원으로 기용되고 있다. 공격 면에서의 역할도 늘었다. 전 코치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부담이 훨씬 커져서 선수들이 어려워하긴 하지만 팀에 잘 흡수돼서 열심히 해주고 있다”라며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 때 고향에 다녀오면 많이 재충전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선수부터 지도자, 그리고 현장 통역까지. 농구인 전주원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