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연말·연시를 비롯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나 친구, 지인 등과 함께 회식 등 술자리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대다수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림은 물론, 증세가 심하면 구토나 설사 등 숙취가 찾아와 고통스럽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 ▲식품 ▲건강기능식품 ▲의약품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소화기관 등에 무리를 주거나 술을 마신 다음 날에 섭취 시 효능이 감소하는 경우도 있어 안전성과 효능을 모두 챙긴 물건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변비약 성분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배변을 통해 숙취를 해소시킨다는 점과 간·소장의 손상이 적다는 점은 매력적인 장점이다.
이에 청년일보는 변비약에 사용하는 ‘폴리에틸렌 글리콜’ 성분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류담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를 만나 숙취와 ‘폴리에틸렌 글리콜’ 성분의 상관관계와 안전성 및 숙취해소제 개발 가능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대변을 보면 술이 깨는 느낌에서 찾아온 ‘호기심’
류담 교수가 변비약의 성분과 숙취 해소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느 날 문득 찾아온 호기심이었다.
류 교수는 “술을 많이 먹은 상태에서 대변을 보게 되면, 특히 액체로 된 대변을 보게 되면 술에서 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대변에서 술 냄새가 많이 나는 현상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그런 호기심과 ‘변비약으로 대장과 소장에 남아 있는 알코올을 배출해 버리면 장 내에 알코올이 없어지게 돼 알코올 흡수가 줄어듦으로써 숙취에서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호기심과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던 류 교수는 양경모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임상강사, 정범선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와 함께 국내에서 실제로 판매되고 있는 변비약 성분 ‘폴리에틸렌 글리콜’을 이용한 정식 연구에 착수했다.
◆ 연구로 확인된 ‘폴리에틸렌 글리콜’ 숙취 해소 효능…“운이 좋았다”
류 교수팀(양경모 임상강사·정범선 교수)은 ▲알코올 단독섭취 그룹 ▲알코올+폴리에틸렌 글리콜 섭취 그룹으로 실험용 생쥐(이하 마우스)를 나눈 뒤, 마우스에서 샘플을 얻어 혈중 알코올 농도와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를 측정하고, PCR 검사 시행 및 행동 양상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알코올 단독섭취 그룹에서 상승했던 혈중 알코올 농도와 혈중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알코올과 폴리에틸렌을 동시에 섭취한 그룹에서는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장 및 간 조직 PCR에서도 알코올 단독섭취 그룹에서 상승했던 염증성 사이토카인 관련 유전자 발현이 폴리에틸렌 글리콜 동시 섭취 그룹에서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현미경 검사상에서도 알코올 단독섭취 그룹에서 발생한 간 및 소장 손상이 알코올과 폴리에틸렌 글리콜 동시 섭취 그룹에서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알코올 단독섭취 그룹에서 악화된 마우스의 걸음걸이 등 행동 양상도 폴리에틸렌 동시 섭취 군에서 유의미하게 회복되는 것이 관찰됐다.
폴리에틸렌 글리콜이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해 낸 것이었다.
류 교수는 “사람이 먹는 변비약을 마우스한테 먹였을 때, 약효가 잘 들지 않았거나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등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연구는 실패했을 것”이라면서 “연구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었음을 고려하면 계속 운이 따라줬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 소규모 인체 임상 통해 ‘효능·안전성’ 확인…“대규모 임상 필요”
또한 마우스를 이용한 동물실험 외에도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도 진행했다.
해당 임상실험은 건강한 성인 남성 4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으로, 류담 교수는 연구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2주간 금주 후 알코올(보드카, 2.5g/kg)을 투여한 뒤, 연구 대상자의 혈액과 대변 샘플을 채취하고, 숙취 증상(메스꺼움, 두통, 피로)을 시각 척도를 통해 표시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혈중 및 대변 내 알코올, 그 대사산물(에탄올, 아세트알데히드, 메탄올, 이소프로판올)을 분석한 결과, 음주 다음날 첫 번째와 두 번째 배변 후 숙취 증상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또한, 음주 다음날 배변 후 혈중 ▲에탄올 ▲아세트알데히드 ▲메탄올 ▲이소프로판올 농도가 유의미하게 줄어듦으로써 알코올 대사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내 알코올 배출도 음주 다음날에 배변한 첫 번째 대변에서 두 번째 대변보다 더 높은 농도의 알코올 및 대사산물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도 ‘폴리에틸렌 글리콜’이 숙취 해소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류 교수는 “해당 연구는 배변이 숙취를 완화하고 알코올 대사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연구”라며 “알코올 섭취 후 장내 알코올 흡수를 줄이는 것이 숙취와 간 손상 위험을 줄이는 잠재적 방법으로 고려될 수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더 큰 규모의 연구 및 동물 모델을 통해 배변과 알코올 대사의 관계를 검증하고, 배변을 촉진하는 식이 보충제가 숙취 완화 및 간 손상 예방 유용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폴리에틸렌 글리콜’ 성분의 적절한 사용량 측면에서는 검증이 되지 않았기에 대규모 임상을 통해 정확한 용량을 파악한 이후 신중히 투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숙취해소제 가능성 ‘충분’…“자동양조증후군 증상 개선도 기대”
류 교수는 ‘폴리에틸렌 글리콜’ 성분의 숙취해소제 개발 및 상품화 가능성에 대해 ‘폴리에틸렌 글리콜’ 성분의 안전성과 이번 연구 등을 통해 밝혀진 효능 등을 고려하면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또한, ‘폴리에틸렌 글리콜’ 성분이 알코올을 배출하는 기전 등을 고려하면 ‘자동양조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도 도움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첨언했다.
‘자동양조증후군’은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분해하는 대사과정에서 인체에 서식하는 효모가 과도하게 증식하면서 생성된 알코올로 인해 과음한 것과 같은 증상을 겪는 희귀질환이다.
류 교수는 “‘폴리에틸렌 글리콜’은 알코올을 씻어주는 개념에 가까운 성분이자 소아 변비약이나 대장내시경 이용 시 사용되는 관장약 등에 사용될 정도로 안전한 성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임상을 통해 효능이 제대로 규명되고 받침이 된다면 숙취해소제로서의 상품화는 물론, 자동양조증후군 증상 개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제품 개발 성공 가능성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다만, 류 교수는 “‘폴리에틸렌 글리콜’을 이용해 숙취해소제 등으로의 상업화를 실현하려면 인체 실험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인체 실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 청년일보=김민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