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영의 ‘아는 그림’
헤이워드에서 연 53세 한국 작가에 대한 회고전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감상하는 보람이 없다. (★☆☆☆☆)
개막을 앞둔 전시에 대한 지독한 혹평입니다. 영국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 심사위원을 지냈던 가디언의 조너선 존스 기자는 지난달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연 ‘양혜규: 윤년(Leap Year)’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양혜규(53)에게 이 리뷰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본인의 X(옛 트위터)에 이 기사를 공유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highly opinionated) 기사, 브라보!”라고 적었다며 “내게 그 정도 자신감은 있다. 비평은 다양하기에 중요하다”고 쿨하게 답했습니다.
혹평 리뷰가 나가고 일주일 뒤, 영국 코톨드 미술연구소 교수를 지냈던 줄리언 스탈라브라스는 가디언에 ‘양혜규는 동시대 가장 독창적 예술가 중 하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냈습니다. 여기서 “존스의 별 1개짜리 리뷰 때문에 이 전시에서 발길을 돌릴 독자가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녀의 작품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요구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대체 어떤 전시였기에 이런 공론장이 펼쳐졌을까요. 왜 지금 양혜규일까요. 지난 15년 동안 여러 차례 양혜규를 따로 인터뷰한 권근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33세, ‘창고 피스’
‘양혜규’ 하면 이 장면입니다. 2004년 런던의 한 레지던시에 있던 33세 양혜규는 유럽 각지에서 전시를 마치고 돌아온 작품을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쌓아올려 발표했습니다. 보관할 곳이 없어 더 이상 끌고 다닐 수 없게 된 작품을 마지막으로 포장해 쌓아둔 형태로 보여준 뒤 폐기할 결심이었습니다. 팔리지 않는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젊은 예술가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결기는 화제가 됐고, 이듬해 독일의 한 개인 컬렉션에 소장됐습니다.
‘아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들
📌팔리지 않은 작품들 박스째 전시한 젊은 조각가의 결기
📌블라인드·빨래건조대·방울은 어떻게 작품이 되나.
📌외할머니 돌아가신 인천 변두리 폐가에서 연 국내 첫 전시
💡동시대 미술가들의 실험작 집에 걸고 싶다면 이 공방 주목하라
20년 전 양혜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창고 피스(storage piece·2004)’가 오랜만에 전시장에 나왔습니다. 런던의 대표적 비영리 공간인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양혜규: 윤년’입니다. 인천의 한 폐가에서 연 국내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2006)의 재현부터 작곡가 윤이상(1917~95)의 삶과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블라인드 신작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까지 120점으로 5개 전시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56년 역사의 현대미술 전시 공간인 헤이워드 갤러리에서는 그간 브루스 나우만, 트레이시 에민, 이불, 아니시 카푸어, 스기모토 히로시, 조지 콘도 등이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융마 수석 큐레이터는 양혜규의 초기작 27점으로 이뤄진 ‘창고 피스’에 대해 “작품일지, 작품의 집합체일지 혹은 우리 수장고에 둬야 할 무언가인지 애매모호한 가운데 궁극적으로 예술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작품이기에 좋아한다”며 “전시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점씩 풀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