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의 열린생각]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본 시대정신

2025-06-03

대통령 취임사는 국민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동시에 미래 비전과 임기 중 정책 방향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여기엔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시대정신이 드러난 경우가 많다. 실례로 1961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새로운 개척자)를 외치며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시오”라는 명문을 남겼다. 또 28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다 당선된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는 1994년 취임사에서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든 국민이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무지개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흑백 인종차별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들의 취임연설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한국 대통령 또한 취임사를 통해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1948년 7월 24일 취임한 이승만(1∼3대)은 해방된 나라의 총선거와 정부수립, 남북통일을 언급한 뒤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용진(奮鬪勇進)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서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萬年盤石)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니다.”고 끝을 맺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5∼9대)는 1960년대 한국의 역사적 과제는 ‘조국 근대화’의 촉성이라며 정치적 자주와 경제적 자립, 사회적 안정을 목표로 대혁신운동을 제창했다. 또 정치적 정화운동과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추진을 공언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국민, 일하는 국민, 협조하는 국민으로 재기할 것”을 당부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짓밟고 취임한 전두환(11∼12대)은 민주복지국가를 기치로 민주주의의 토착화, 정의사회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을 내세웠다. 또한 계엄령 해제와 정치풍토 개선, 민생안정, 사회정화운동도 언급했다. 3당 합당으로 노태우에 이어 당선된 김영삼(14대)은 ‘신한국 창조’를 강조했다.

IMF 외환위기 속에 취임한 김대중(15대)은 정부수립 50년만에 이루어진 첫 여야간 정권교체라는 기쁨보다 국민에게 위기극복을 호소해야 했다. 가장 유려하고 본인의 철학이 담긴 취임사에서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며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 여러분도 나라가 벼랑끝에 서있는 금년 1년만이라도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고 간절히 부탁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식정보대국, 문화산업과 함께 정치보복을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나아가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짓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역설했다. 노무현(16대)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 참여민주주의,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국민통합을 강조한 점이 돋보였다. 이를 위해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새 정부 국정운영의 원리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박근혜의 탄핵으로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 문재인(19대)은 국민통합과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밝혔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친위 쿠데타로 자멸한 윤석열(20대)은 반지성주의와 자유를 외쳤으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그러면 이번에 당선된 이재명(21대)은? 내란진압, 회복과 성장, 국민통합 등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취임사와 같이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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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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