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 ⛵ 물결이 고요해진 뒤

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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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이 익숙한 격언을 이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책이 100만부 넘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1분마다 3권씩 빌려 가는데도 한강 작가는 조용합니다. '작가'란 사람들은 아마 세상을 향해 할 말이 많아서 그 길을 택했을 텐데,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목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한강 작가는 오히려 무거운 침묵을 택했어요.

오늘은 이런 한강 작가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기고문 한 편을 띄웁니다. 함께 읽고 대화 이어갈게요.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은 열흘의 밤

2024. 10. 16. 차경희 문학서점 고요서사 대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선뜻 읽기 어려운 책일 수 있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용감하게 책장을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연결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았고 혼자서는 읽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몇 번이고 되새겨야 할 진실이 담긴 작품이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럼 여럿이 함께 읽어보자' 생각했다. 마침 5월이 다가오고 있었고 분명 나 같은 독자들이 더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를 혼자 읽기 두려운 사람들, 그들과 모여 이 책을 같이 읽자. 2016년 5월의 결심이었다.

이런 결심으로 진행했던 행사가 '<소년이 온다>릴레이 낭독회'다. 2016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들의 항쟁 기간인 열흘에 맞춰 매일 밤 소설을 낭독했다. 릴레이 진행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저녁 7시 30분, 한 명이라도 낭독회에 찾아오면 운영자인 나와 돌아가며 소설을 소리내 읽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미리 홍보는 했지만 사전 신청은 받지 않았다. 소설을 읽는 열흘간, 광주를 떠올리며 작은서점의 불빛을 찾아올 독자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참석자가 없으면 릴레이는 중단될 수 있음을 각오했었는데, 다행히도 참석자 총 33명, 하루 평균 6명이 서로에게 낭독의 배턴을 넘겨가며 열흘 동안 릴레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 10월 14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강 작가의 책<소년이 온다>가 새로 입고되자 방문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매일 밤, 참석자들의 이름을 <소년이 온다> 책의 면지(색지)에 날짜와 함께 기록했다. 이 녹색 종이에는 소설가 한강의 이름도 적혀 있다. 릴레이 낭독회의 마지막 날인 27일 밤, 한강 작가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미 낭독을 진행하고 있던 참석자 10명 중 몇몇은 작가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기도 했고 몇몇은 중간에 들어온 사람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우리는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고 낭독을 계속했다. "책 가져오셨어요?"라고 작가에게 묻자 그는 조용히 "네" 하고 대답하고는 곧 다른 사람의 낭독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아홉 날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는 끔찍한 대목에서 멈칫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목이 메여 읽기를 힘들어했고 누군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릴레이 낭독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던 때, 한강 작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가 2015년 12월 고요서사에 손님으로 방문했던 이후 이따금 안부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소년이 온다> 낭독회 소식을 반가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메시지로 전한 것이다. 그런데 낭독회 시작 이틀 전,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 한편으로는 작가의 낭독회 참석을 바라기도 했었지만, 마치 지금처럼 작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때이기도 하고 수상 이후 조용히 지내기를 바랄 그의 마음이 예상되어 답장이나 방문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었었다. 그런데 찾아와준 것이다.

낭독이 모두 끝나고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한강 작가가 말했다. 릴레이 낭독회에 매일 오고 싶었지만 자신이 방해가 될까 봐 오지 못했다고, 그렇지만 저녁 7시 30분이 되면 낭독회에 모였을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고 떠올렸다고, 그러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열흘의 밤,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넘게 읽었다. 동호, 정대, 은숙, 선주, 진수 등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을 말하고 그들의 말을 목소리로 뱉는 행위는 어떤 기도 같기도 했다. 소설과 읽는 이가 긴밀히 연결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낭독회가 끝나고 며칠 뒤의 일도 잊을 수 없다. 고요한 서점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흰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 왔다.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서점 이곳저곳을 한참 날아다니는 나비가 신기하여 영상을 찍어 한강 작가에게 전송했다. 단지 나비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넋이었을까. 사실 알 수는 없지만, 작가와 나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서점에 다녀갔음을 느낀 그 순간을 문자 메시지로 나누며 다시금 광주와 소년과 열흘의 밤을 떠올렸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잊지 않는다면 '소년은 온다'는 믿음을 공유하면서.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배출은 국가적 염원에 가까웠어요. 2000년대 기자들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이면 경기도 안성에 있는 고은 시인의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물론 허탈해하며 철수하는 일만 반복됐지만요. 전두환 군사정권은 서정주 시인에게 노벨 문학상 수상을 지원하는 대가로 정권에 협조를 제안했다고 전해집니다.

한강 작가가 마침내 그 숙원을 이뤘습니다. 한국 최초, 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대통령은 "국가적 경사"라고 했습니다. 정치권에선 '자긍심' 같은 단어도 들리고요. 내친김에 과학 분야 노벨상을 한국 사람이 타려면 국가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세간에 오르내립니다.

노벨 문학상을 개인적인 업적, 문화적인 성취를 넘어 국가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서일까요? 벌써 한강 작가의 소설로 한국이 '잘못' 재단될까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역사로부터 멀어지라고 넌지시 충고하기도 합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 담긴 5·18 민주화운동(<소년이 온다>), 4·3 사건(<작별하지 않는다>) 등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못마땅한가 봐요. 그러면서도 수상 자체는 BTS나 <오징어 게임>과 한 줄에 세우며 '한반도의 큰 성취'라고 치켜세웁니다.

세상은 떠들썩한데, 주인공은 잠잠합니다. 수상 하루 만에 기자회견은 하지 않는다고 딱 잘랐습니다. 아마 마지못해 수락했을 스웨덴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선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고, 수상 전 예정됐던 한 사립재단 시상식에 참석해선 "지금 마음 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한강 작가는 집단적 힘이 잘못된 쪽으로 향했을 때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온 역사를 응시하며 그 집단에 가려진 개인들의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이런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정은귀 번역가는 "작고 여린 것들을 향한 시선"을,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여리지만 끝내 훼손될 수 없는 인간 안의 마지막 존엄성"을 읽습니다. 김미정 문학평론가는 "우리에게 ‘존엄’이 무엇인지, 좀 더 나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어요.

과거 집단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전히 '5·18' 하면 북한군 개입설을, '4·3' 하면 공산주의자의 폭동만을 말합니다. '여린 것'에 주목하는 작가의 시선이 못내 불만스러운지, 그의 지난 말 한마디를 끄집어내 사상 자체에 흠을 내는 것으로 작품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벌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적 경사'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찬사는 어쩌면 작고 여린 개개인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작품에 어울리는 축사는 아닌 듯합니다.

"이 책은 많은 분이 읽어주셔야 완성이 되는 소설이라서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강 작가가 2014년 <소년이 온다> 출간 당시 한 말입니다. 진은영 시인은 '완성'이란 말을 "망각과 싸우려는 소망"이라며 '기억'과 연결 짓습니다. 기억해야 여린 존재들이 겪은 비극을 되풀이하고 망각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남지 않을 테니까요. 지난 한 주, 많은 사람이 벅차고 들뜬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이제는 한강 작가의 글을 그의 말대로 '조용하게' 읽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1. 2016년 5월, 한강 작가는 맨부커상을 받은 직후에도 한 독립서점이 주최한 <소년이 온다> 낭독회에 조용히 다녀갔다.

2.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개인적 영예와 성취를 넘어 '국가적 경사', '한반도의 성취'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 소환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한강 작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3. 작고 여린 것들의 고통과 존엄에 대해 쓴 한강 작가의 책을 이제는 조용하게 읽어야 할 때가 아닐까.

북한군 러시아 파병, 영상으로 확인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한 사실이 영상으로 확인됐습니다. "거 넘어가지 말거라." "야, 야." 북한말이 들린다고 합니다.

"대북전단? 우리도 인권이 있어."

'통일촌'을 아시나요? 비무장지대(DMZ)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있는 마을입니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의 대치가 끝나지 않으면 마을의 고통도 계속됩니다.

'착한 초콜릿'이 될 수 있을까

미국 기업이 내년 출시 목표로 '시험관 초콜릿'을 연구 중입니다. 카카오 단 한 알로 초콜릿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데요. 아동노동 등 초콜릿 생산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까요?

미국에서 '난리났다'는 그 운동

요즘 이 운동이 유행한다면서요? 라켓으로 플라스틱 공을 주고받는 '피클볼'. 테니스나 탁구와는 또 다른 피클볼의 매력, 대체 뭘까요? 직접 쳐봤습니다. 타격감이 꽤 짜릿하다네요.

📬 위고비를 말하고자 하는지, 다이어트 약품의 오남용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다이어트를 강권하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건지 모호하게 논점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내 키에 비해 이건 비만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2년을 내리 37kg를 유지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론 각종 식이장애와 강박증에 사로잡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좀 강박이 남아있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었나 의문이 듭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는 것을 권하는 사회가 참으로 안타까워요. (김포송님)

📬 위험성을 알면서도 체중관리를 못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청년층이 과거의 청년보다 체중관리에 더 적극적이고 운동을 통한 긍정적 관리를 추구하는 비율도 높아졌습니다. 사회의 압박에 음과양을 같이 보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익명의 독자님)

📬 이제 기업과 사회가 방법을 바꾸어 예전과는 달리 이건 건강하고 널 위한 거라면서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건 교묘해서 지각도 없이 수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서워요. (너무빠른세상을살아가는거북이님)

📝 지난 점선면Lite <🧙 평생 소원을 이뤄줄게>를 읽고 독자님들이 남겨주신 이야기입니다. 다이어트에 대한 제 심정은 아주 복잡해서, 그게 전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다이어트 권하는 사회가 비만치료제를 '다이어트 약품'으로 오남용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위고비는 그중에서도 혁신으로 불리는 제품이지만, 우리 사회가 이 약을 건강하게, 적절히 사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통념과 달리 가벼운 비만은 정상 체중과 비교해 사망률 증가와 연관이 없고, 과체중은 오히려 낮은 사망률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뚱뚱하거나 아주 마른 경우에만 이른 사망과 상관관계가 있고요. 그런데 비만 자체가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과체중이나 가벼운 비만도 '건강 관리 못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살 빼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발언이나 모욕이 아닌 '건강을 위한 조언'이 되고요. 적정한 몸, 건강한 몸은 사람마다 다른데도요.

날씬한 몸을 욕망하거나 선호하는 경향은 한 익명의 독자님이 말씀하셨듯 젊은 세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 듯합니다. 이게 과연 건강한 현상일지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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