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울리히 스트레스 회복이론과 치유농업

2025-11-10

[전남인터넷신문]현대인은 스트레스 속에 산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과도한 경쟁, 디지털 피로, 도시 생활의 밀도와 소음은 마음의 평온을 흔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스트레스를 “21세기 건강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며, 정신건강 문제의 급증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치유농업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인간이 본래의 환경과 관계성을 회복하는 근본적 치유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치유농업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이론이 바로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Roger S. Ulrich)의 스트레스 회복이론(SRT, Stress Recovery Theory)이다.

로저 울리히는 1945년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나 텍사스 A&M대학교 환경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의료환경디자인과 환경심리학 분야를 개척한 학자이다. 그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 회복에 미치는 생리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치유 환경(healing environment)’ 개념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그의 연구는 오늘날 병원 조경, 도시 녹지 계획, 치유농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초 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울리히는 1984년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회복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병원 환자 데이터를 비교했는데, 창문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 환자가 벽만 보이는 환자보다 통증 호소가 적고, 약물 투여량이 낮으며, 회복 기간도 짧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의료환경뿐 아니라 도시계획, 조경, 산림치유, 그리고 농업 치유 영역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울리히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접촉할 때 정서적 긴장이 낮아지고, 불안과 분노가 완화되며, 생리적 안정 상태가 촉진된다는 것이다. 이는 진화심리학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안전한 자연환경을 선호해 왔으며, 초록·흙·물·바람 같은 감각 자극이 안정감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치유농업은 바로 이러한 자연의 회복 메커니즘을 농업이라는 실천적 공간에서 구현한다. 식물을 만지고, 씨를 뿌리고, 흙을 고르고, 수확의 기쁨을 경험하는 과정은 복잡한 심리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이 ‘살아 있다’라고 느끼는 근원적 행위다. 특히 농업 활동은 단순한 관람형 자연 경험이 아니라 능동적·참여적 자연 접촉이라는 점에서 울리히의 이론을 실천적으로 확장한다.

땀을 흘리며 흙을 만지는 시간은 몸의 긴장을 풀고, 일정한 리듬의 노동은 마음을 안정시키며, 식물의 변화는 ‘성장’이라는 긍정적 신호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경험이 정서적 자존감을 키우고 ‘내가 무언가를 기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오늘날 치유농업은 고령자 돌봄, 청소년 자존감 회복, 장애인 재활, 우울·불안 완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활용된다.

노인에게는 일상 속 리듬과 사회적 연결을 만들어 주고, 청소년에게는 성취와 감정 조절 경험을 제공하며, 직장인에게는 디지털 과몰입으로부터 벗어나 심신을 재조정하는 시간을 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농작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초 원예활동에서 감각 자극, 소규모 책임농장 관리, 농산물 가공 체험까지 과정별 설계가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농업의 프로그램 설계는 결국 사람의 심리를 읽고 회복의 단계를 맞추는 섬세한 기획이다.

울리히의 이론은 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스트레스의 완화는 심리 상태뿐 아니라 신체 반응과도 직결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자연 접촉은 심박수·근육 긴장·혈압·호흡 패턴을 안정시키고, 뇌파에서 알파파 증가를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유농업 현장에서 이러한 생리적 측정 기법을 기반으로 프로그램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치유농업의 제도화와 전문화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도 생체신호 기반 치유농업 연구가 확대되고 있어, 조만간 의료·복지·교육 현장과의 연계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흙은 사람을 쉬게 하고, 식물은 사람을 살리고, 자연은 사람을 품는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큰 회복의 방식을 자연 속에서 찾는다.

울리히의 이론은 과학이 자연의 가치를 증명한 사례이며, 치유농업은 그 가치를 일상 속에서 실현하는 길이다. 자연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이고, 농업은 생산이면서 동시에 치유다. 스트레스의 시대, 치유농업은 우리 삶의 회복력을 키우는 또 하나의 인프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함께하는 치유의 힘, 레프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1.06.).

최연우. 2025. 경험이 자라는 농장, 데이비드 콜브의 경험학습모형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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