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딸이 아버지의 첫 재판에 서기까지···수많은 유족이 있었다

2025-11-05

5일 오전 11시 경북 상주시 대구지법 상주지원 재판정 방청석에 앉은 강효진씨(27)가 두 손을 모았다. 지난해 4월18일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숨진 뒤 열린 첫 재판이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규모 사업장까지 적용된 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린 형사재판이었다. 재판에 오기까지 걸린 약 1년 7개월,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는 15분 남짓동안 효진씨와 같은 일을 겪은 산업재해 유가족과 활동가들이 뒤를 지켰다.

효진씨의 아버지 강대규씨(사고 당시 64세)는 경북 문경의 한 화재 복구 현장에서 패널(건축용 널빤지)을 지붕에 설치하다 추락해 숨졌다. 동료 2명이 지붕 위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패널을 잡았는데 패널이 그대로 회전해 강씨를 쳤다. 패널은 약 66㎏에 달했다. 사고 당시 강씨는 안전모를 쓰지 않았고 추락을 막을 어떤 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효진씨는 지난 3월 사측 관계자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당시 현장소장 등 관리자 2명이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50명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 뒤 일어난 사건이라 대표이사도 같은 법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첫 재판 날까지 효진씨는 “모든 것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재판정에서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이 오가고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을 것을 상상하며 밤마다 울곤 했다. 그때마다 그를 달랜 건 다른 산업재해 유가족들이었다. 이날도 효진씨를 응원하기 위해 유가족과 활동가들이 모였다. 드라마 현장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숨진 이한빛PD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충북 천안에서 경북 상주까지 2시간 차를 몰고 왔다. 이씨는 “효진씨도 한빛이 추모제에 참석하려고 먼 길을 왔었다”며 “힘을 보태려고 가는 거니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용균재단의 활동가들도 긴장한 효진씨를 다독였다. 효진씨는 “먼저 싸워온 유가족들이 응원해주지 않았으면 재판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동안 스스로 초라해 보였는데 이제 ‘겁쟁이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다만 “고인이 사고 현장에서 자재가 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와 있었다”며 “고인의 과실도 일부 개입된 사고”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변론에서 피고인들은 판사를 향해 “유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재판정에서 마주친 효진씨와 가족들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사는 관리자 2명에겐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금고 1년을, 대표이사에겐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행위자와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따라 주식회사 DHR엔 벌금 2억원을 구형했다. 효진씨는 “피고인들의 태도에서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서도 “검찰이 집행유예를 구형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재판 결과는 다음달 17일에 나온다. 효진씨는 “선고가 나면 아빠 사건은 끝나겠지만 여전히 저처럼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길 것”이라며 “그런 사람들에게 계속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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