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하프마라톤으로 마포구 일대 교통 통제
차량 진입 막혀 마포농수산물시장 ‘개점휴업’
상인 “올 상반기 예정된 대회만 20회” 푸념
서울시·시설공단·체육회는 서로 책임 미뤄

“이런 날마다 매출은 전멸이야. 전멸.”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김순례씨(63)가 말했다. 그의 시선은 시장 정문을 향하고 있었다. 이날 시장 부근에서는 서울하프마라톤(주최 조선일보,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체육회)이 열렸다. 김씨의 시선을 따라간 시장 정문 앞 도로에는 하얀 철제 통제선 너머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만 짧은 반바지를 입은 채 달리고 있었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도, 시장으로 들어오는 고객도 없었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마라톤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차가 사라진 도로를 질주하는 참여자와 주최 측은 환호하지만, 주변 상인들은 울상이다. 27일 기자가 만난 마포농수산물시장 상인들은 “서울하프마라톤 행사로 당장 일대 교통이 마비돼 매출이 3분의 1가량 줄었다”고 했다.

실제로 27일 시장 안은 적막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시장 안에서 만난 일반 시민은 열 명 남짓이었다. 시장 내 점포 10곳 중 2~3곳 정도는 아예 문을 닫았다. 정양호 마포농수산물시장 상인회 회장은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전기료도 못 벌어 아예 문을 닫는 가게가 많다”고 했다.
서울하프마라톤은 행사 진행을 위해 2시간 가량 시장 정문 앞 도로의 통행을 제한하면서 시장 주차장 입구까지 가로막았다. 23년째 시장에서 농산물 점포를 운영하는 이모씨(67)는 “행사를 하면 주차장에 차를 못 세우고, 그러니까 손님도 하나 없다”며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피해는 우리만 계속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마라톤 참여자들이 주차장을 메우면서 정작 시장 손님은 차를 대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25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정모씨(69)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90%가 자차를 이용해 오는 손님”이라며 “행사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는데 그때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니 손님들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라톤 행사로 발생하는 쓰레기, 화장실 이용도 문제다. 김씨는 “생리현상이니까 화장실 쓰고 물세 내고 이런 거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도 “(시장 내 점포) 임대료는 임대료대로 올리고, 관리비는 관리비대로 올리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인터뷰를 듣던 주변의 한 상인은 “맨날 이렇게 행사를 할 거면 시장을 차라리 없애라”라고 소리쳤다. 이 시장의 점포 임대료와 관리비는 서울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이 징수해 마포구청으로 보낸다.

상인들은 “운동도 행사도 다 좋은데 제발 같이 살 방법 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원하는 행사라서 그만둘 수 없다면 행사로 인한 피해를 보전해 달라는 요구다. 정 상인회장은 “서울시에서는 (행사)운영권은 마포구에 있다고만 하고 마포구는 서울시설공단에 위탁 관리한다고 한다. 공단에서는 다시 서울시 행사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 상반기 예정된 마라톤만 20회나 된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울하프마라톤에 참여한 A씨(38)는 28일 “그 공간이 출발지와 도착지로 쓰기 좋고 주요도로가 아니라서 도로통행에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최 측에서 참가비로 보통 7만~8만원 정도를 받는데 도로를 통제하는 것처럼 공공의 사용료를 내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다”며 “내 취미 생활로 누군가의 생계가 위협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최 측이 피해보전을 해주든 참가비 분배를 하든 해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마라톤이 시작되자 시장 정문 앞 도로에 나와 꽹과리와 북을 치기도 했다. 마라톤 참가자들은 응원 인파로 오해하고 손을 흔들었고 상인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시 서부공원여가센터 관계자는 “사전 일정 공유나 주차장 통제 등을 하고 있지만 피해보상 등은 주최 측이 담당해야 할 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체육회 관계자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면서도 “체육회는 결정권이 없어서 답변드릴만한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