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투표하기

2025-02-03

레트로는 멀지 않은 환상이다. 과거는 미화라는 옷을 입고 은근슬쩍 다가온다. 봐, 너도 사실은 과거를 원하잖아. 그때 얼마나 좋았니? 캬, 그때가 참 좋았지. 너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 전체의 정서가 될 때다. 사회 전체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희생된 사람과 무자비한 역사를 없는 듯 무시하고, 좋은 기억만 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심지어는 그것을 국민 투표에 부쳐 공식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장편소설 『타임 셸터』(2024)는 이 섬뜩한 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사람들을 위해 개소한 시설 ‘타임 셸터’, 이른바 시간 대피소는 환자만을 위한 시설에서 벗어나 과거를 욕망하는 사람들에게로 점점 더 퍼져나간다. 주택 한 동, 그 다음에는 한 거리, 그 다음에는 한 도시, 이윽고 국가와 유럽 전체가 과거의 재현이 된다.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불가리아에서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경쟁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1980년대가, 어떤 나라에서는 1960년대가 선택을 받고, 유럽의 국경은 이제 시간의 국경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들을 동원해 역사적 사건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거기에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포문을 여는 사건이 포함된다.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이 과거를 향해가는 듯하다. 고스포디노프는 한 인터뷰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감각에서 이 소설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를 비롯한 보수적 포퓰리즘의 범람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연대라는 이름으로 봉합해두었던 욕망이 다시금 표면에 드러나고,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든 자신이 홀로 살 길을 찾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고 여기는 때다. 그러나 노스탤지어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과거의 세계에 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므로.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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