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 제약·바이오 업계도 '예의주시'

2025-09-12

[비즈한국] 제약·바이오 업계가 미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불법체류 단속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는 당장은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향후 미국 내 생산 기지 확보와 운영을 추진하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비자 문제’가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특정 업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모든 한국 기업에게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제약바이오 업계 “당장은 문제 없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생산 기지를 운영하는 곳은 롯데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 정도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인수한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을 가동 중인데, 인력 대부분을 미국 현지에서 채용했다. 회사 측은 “필요할 경우 정식 비자를 통해 한국 인력을 파견한다”며 이번 사태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 역시 미국 법인을 현지 고용 위주로 운영 중이어서 특이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녹십자, 종근당, 보령, JW중외제약,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주요 기업들은 주재원 비자(L1)나 전문직 비자(H1B) 등 합법적 절차를 거쳐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식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은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이나 인수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생산 시설은 연구소와 달리 장기 체류 인력, 즉 다수의 숙련된 한국 엔지니어와 운영 인력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다른 업종에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약·바이오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비자 체류 방안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인 316명 무사 귀국, 모호한 단속 기준은 여전

이번 사태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발생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총 475명을 체포했고, 이 중 한국인 316명이 포함됐다.

문제가 된 것은 입국 자격과 체류 목적 불일치였다. 상당수 인력이 ESTA(무비자 입국 프로그램) 또는 단기 상용·관광 비자(B1/B2)로 입국한 뒤 현장에서 근로 활동을 벌였다. 당국은 이를 ‘체류 목적 위반’으로 간주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합법적인 B1/B2 비자 소지자도 구금된 사례가 있어, 미국의 단속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긴급하게 대응에 나섰다. ESTA로 출장 온 직원들에게는 귀국을 지시했고, B1·B2 비자 소지 임직원은 숙소에 대기하도록 했다. 현장에는 주재원 비자(L1)와 전문직 취업 비자(H1B)를 가진 일부 인력만 남아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체포된 한국인 316명은 구금 8일 만인 9월 12일 오후 3시 30분, 대한항공 전세기를 통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총 330명이 탑승했으며, 이 중에는 외국 국적자 일부도 포함됐다. 귀국자들은 조사와 구금 과정에서 상당한 불편과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당국과 긴급 협의를 벌여 귀국 일정을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과정에서 “합법적 체류자도 단속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인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서 인력 운용을 할 때 겪을 수 있는 법적 불확실성은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업계, ‘비자 규정 명확화’ 요구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재한 대미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주요 기업들은 미국 정부에 “B1 비자 보유자가 현지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 단속 대상이 되지 않도록 규정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B1 비자는 회의 참석이나 계약 업무 등 제한된 활동만 허용되는데, 이번 단속에서 이 경계선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됐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정부 역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뿐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모든 대미 투자 기업에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번 사건을 단순한 ‘이민 단속’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 경쟁 속에서 나타난 제도적 허점으로 해석한다. 대규모 해외 투자와 현지 생산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비자와 노동 규제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한 변수가 됐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합법적 비자를 소지한 인력까지 단속 대상에 포함된 걸 보면 현지 규정이 얼마나 불명확한지를 보여준다”며 “미국이 글로벌 투자 허브로서 자국 내 생산기지 유치를 독려하면서도 비자·노동 규제는 모호하게 운영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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