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불문 미래 불안과 정체성 혼란.
삶에 훅 들어온 AI와 기대 이상으로 늘어난 수명 탓에 사회가 정한 낡은 생존 방정식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전인미답의 길 위에서, 우리가 불안을 줄이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엔진은 뭘까요. 많은 전문가는 '질문'을 꼽습니다. 질문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인생을 재정의하는 통찰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질문하는 인생' 시리즈는 다른 이들의 질문을 통해 내 질문을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오늘은 한국 섬유·아웃도어 산업 선구자인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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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인터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어릴 적 딱 한 번 본 점쟁이가 말했다. "얘는 외국에 1005번 갈 사람"이라고. 1950년대에 어디 가당키나 한 상상인가. 그런데 그게 스펠(주문)이 됐는지, 수십 년 동안 1년의 절반은 해외에서 보내는 사업가가 됐다. 서울상대 무역학과를 나와 스물일곱에 영원무역을 설립한 성기학(78) 회장 얘기다. 노스페이스 런칭(1997) 등 국내 아웃도어 신시장을 개척한 후 한 우물을 파 국민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가 거둔 큰 성공을 보고 남들은 "미래를 내다본 현자 아니냐"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부인한다. "우연의 연속이었고, 차이를 만든 건 태도였다"고. 남보다 더 잘해내겠다는 집요함으로 열심히 살면서, 위기 앞에서도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짓 없이 정직하게 맞서며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룬 결과라고. 그래서 이젠 다른 이들에게 조언한다. 질문하라고. 충분히 집요한가, 남 탓 아닌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가. 지난 10월 22일 서울 영원무역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인생을 뒤흔든 결정적 장면을 듣고,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선견지명 아닌 집요함
큰 성공 뒤엔 선견지명이 있을 거라 사람들은 지레짐작한다. 아니다. 인생을 돌아보니 그저 우연의 연속이다. 1980년 한국 기업 최초의 해외 직접 투자였던 방글라데시 의류공장도 그랬다. 현재 그 나라의 압도적 1위 수출 기업에 올라 여의도 세 배 크기 산업단지(KEPZ)를 직접 운영하니 사람들은 "대단한 혜안"으로 또 포장한다. 그런 거 없다.

물론 꾸준히 해외 진출을 모색했고, 인구가 많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영원무역 초기 동업자 3인 중 하나가 혼자 여행 갔다 덜컥 사업 약속하고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시작했을 뿐이다. 기계 발주까지 마친 이듬해 지아우르 라흐만 대통령이 암살당해 정국이 요동치자 정작 그 동업자는 겁먹고 "못 간다"며 발을 뺐고, 내가 나섰다. 믿을 만한 현지 파트너가 살해당할 정도로 정말 불안했다. 북한 스파이 연루설 등 흉흉한 소문과 함께 나 역시 신변 위협을 여러 번 받았다. 다들 말을 안 해 그렇지 해외 투자는 온갖 위협에 노출된다. 나라고 왜 겁이 안 나겠나. 하지만 나 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선두에 섰다.
40년 동고동락 동갑 운전사 보며
65세 넘어 72세 정년 연장 어떤가
50년 경제 순풍, 역풍 변환 시기
관성 대신 '다른 질문' 던져야 한다
인생 첫 직장, 창업도 마찬가지였다. 거창한 계획은커녕 늘 우연에 이끌렸지만 일단 시작하면 집요하게 매달렸다. 경기가 최악이던 1972년 군 제대 후 우연히 신문 채용 공고 보고 신입 공채로 입사한 가발·스웨터 수출 OEM 기업 서울통상 시절이 딱 그랬다. 처음엔 남들처럼 월급 벌자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유럽 전역의 스웨터 마케팅을 맡은 첫날부터 신입 아닌 사장처럼 일했다. 거래처를 이미 확보한 미주·중동과 달리 유럽은 주문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8자짜리 ORD 전보나 15자짜리 레터 텔레그램 써가며 열심히 영업했다. 별 볼일없는 지역이라 신입에 맡기고 다들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좋았다. 간섭 안 받고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며 성실히 일한 결과 성과가 좋았고 상응하는 후한 대접을 받았다. 사장은 석 달 치 월급 정도의 거금을 내 손에 쥐여주며 외국 바이어 대접을 맡길 만큼 나를 신뢰했다.
창업 과정도 똑같다. 한 번도 사업을 꿈꾼 적 없는데, 내 역량을 눈여겨본 스웨덴 바이어의 이런저런 요청이 1974년 3자 동업 의류 수출회사인 지금의 영원무역으로 이어졌다. 한국 전체 수출액이 44억 6000만 달러, 그중 36%를 섬유가 채우던 시절이었다. 이젠 영원무역 매출액만 30억 달러가 넘는다.
'때문에' 아닌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엘살바도르 등 전 세계 영원무역 직원 9만여 명 중 국내 근무 한국인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생산기지가 전부 해외에 있어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980년 말까진 오히려 매출 대부분 국내에서 나왔다.
그런데 노사분규가 들끓던 1989년 1년 가까운 노조 투쟁 속에 성남공장 불법 점거로 50일간 공장 가동이 멈춘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장의 생산물량은 인도네시아 하청으로 맞췄지만, 더는 한국에서 제조업 못 한다고 판단해 철수했다.

이런 엄청난 위기가 닥칠 때마다 되뇌는 말이 있다. "Don't panic, calculate(흥분하지 말고 냉정히 계산하라). " 사업은 무수한 위기와 선택의 연속인데, 겪어보니 패닉이 제일 나쁘다.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 서두르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면 장기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는 선택을 한다. 난 계산이 먼저였다. 공장 점거로 회사 존립이 위협받는 와중에도 노조와 직접 협상에 앞서 체계적 대응을 위해 중간 관리자 교육부터 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런 인재(人災)는 치유가 어렵고, 한국에선 세계적 기업으로 클 수 없다. 문 닫고 해외로 가자. 그 결과가 지금의 해외 생산 기지다. 한국의 인건비 급상승 직격탄을 피해 글로벌 주요 OEM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91년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사이클론과 해일 피해 때도 그랬다. 나이키가 처음으로 30만장 주문을 냈는데, 치타공 공장이 바닷물에 잠겨 전부 버려야 했다. 나이키 본사에선 "왜 이런 데 공장을 돌려 낭패를 보게 하느냐"고 질책했다. 다들 공장 철수를 예상했다. 난 패닉 대신 장단기를 아우르는 계산을 했다. 한 달 유예를 얻어 기어이 납품을 맞췄다. 이때 쌓은 신뢰는 더 큰 주문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험을 해서인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때문에"다. 누구든 "때문에"라고 하면 야단친다. 대신 "불구하고"를 요구한다. 한국의 강성 노조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 하지 말고 극렬 노동운동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세계적 기업이 된다.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타오르고 있는 MZ 혁명은 당연히 우리 공장에도 큰 차질을 준다. 하지만 그럴수록 품질 챙기고 납품기일 엄수하는 게 사업의 기본 임무다. 정치 탓하며 변명하면 누가 우리를 믿고 주문을 주나.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방글라데시 정치 불안에도 '불구하고' 납품엔 아무 영향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더 달라. "
우대 아닌 성과주의
운전면허증이 없다. 대신 40년 넘게 함께한 동갑내기 운전기사가 있다. 젊은 기사로 바꾸라는 조언을 가끔 듣는데 무시한다. 업무 능력이 떨어졌다면 모를까 늘 시간 엄수하고 헌신하는데 고령이라고 바꿀 이유가 없다. 나도 똑같이 78세인데 한국에 있으면 매일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서 종일 근무해도 끄떡없다.
최근 양대 노총 요구로 법정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대다수 기업은 반대인데, 난 수명이 늘어난 만큼 지금보다 20% 더 늘려 72세로 했으면 좋겠다. 나이에 맞는 일 하고 상응한 월급 받으면 된다. 젊은 층 일자리 갉아먹는 베이비부머 세대 욕심이라는 비판도 있던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고령층 빈곤 문제는 차치하고 오히려 너무 이른 은퇴는 연금 고갈 등 다음 세대의 사회적 부담만 가중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우리 회사에 호봉제가 없어 가능하다는 걸 잘 안다. 과거 어느 대기업에선 호봉제로 과한 연봉 받은 기사가 문제 됐지만, 우린 업무 대비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주지 않는다. 거꾸로 나이 먹었다고 내보내지도 않는다.
이런 게 성과주의 아닌가. 나이는 물론 성별·학벌, 심지어 인종도 안 따진다. 지난 10월 높은 여성 관리자 비율 등 여성에게 기회 준 공로로 세계여성이사협회(WCD)의 비저너리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걸 보고 내가 여성 우대 정책을 폈다고 오해하는데 아니다. 차별도 없지만 우대도 없다. 성과에 보상한다는 원칙만 지킨다. 수상 소감 쓰려고 돌아보니 집안 분위기가 컸다. 할아버지는 1920년대 경남 창녕에 신학문 가르치는 남녀 공학 강습소(학교)를 세워 여자도 가르쳤다. 시집온 며느리(내 어머니)를 서울로 유학 보내 신학문을 배우게 할 정도였다.

기업들이 현지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고위직은 한국인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린 다르다. 차별 않고 승진 등 똑같이 보상한다. 최근 방글라데시 공장장 후보 5명 전부 현지인이었다. 다들 27년 전 공장 들어와 밑바닥부터 온갖 어려운 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딘 직원들이었다. 누굴 시켜도 5000~6000명 규모 공장 정도는 거뜬히 운영할 인재들이다.
문득 한국엔 외부환경이나 타고난 조건 탓하지 않고 집요하게 노력해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에서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인재가 이제 별로 없다고 깨달았다. 젊은이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나이 들면 직급에 취해 현장을 무시한다. 우리 회사를 비롯해 한국은 지난 50년 순풍으로 비행해왔지만 이젠 관세전쟁의 역풍을 맞으며 비행해야 한다. 이런 위기가 세대 불문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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