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고층 건물 발상의 서울 중심주의와 식민주의

2025-12-02

서울 종로구 소재 종묘(宗廟) 앞에 145m가량의 건물을 짓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계획과 이에 반대하는 논리는 ‘보존 대 개발’의 이분법일까. 보존과 개발의 의지가 대칭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두 가지 가치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 논쟁에는 어떤 형태로든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의 개발 논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보존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부분적 개발, 유네스코의 권고 수용, 절차적 민주주의, 종묘 주변 건물들의 재생 계획을 이야기한다(‘주간경향’ 1655호, 박송이 기자, “‘녹지축’ 포장하면 종묘 일대 개발 가능?” 기사 참조).

오세훈 시장은 기존의 규제를 2분의 1로 완화하며 강한 개발 의지를 드러내면서 이를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내외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오 시장의 꺾이지 않는 의지가 한강버스 사업에 이은 건축업계와의 ‘협력’일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짐작일까. 토건 국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식적 의심 아닐까.

나는 이 문제가 보존과 개발의 딜레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구조적 모순이자 부정의인 서울 중심주의의 일면이다. 1395년에 세워진 이 문화유산을 망칠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서울 말고 또 있을까. 서울 정도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면, 그 필요성 자체가 제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 국민의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나라는 없다. 서울 집중의 논리는 계급, 젠더, 교육, 노동, 의료, 부동산 등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불평등과 불합리의 원인이다. ‘서울’은 한국의 상징으로서 - 지리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말한 ‘글로벌 도시들’에 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 한국인의 욕망을 대변한다.

서울시장은 곧 대권 주자라는 등식,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 제목, 서울대나 인(in) 서울 대학 진입에의 열망은 계급, 젠더 문제가 얽혀있는 오랜 세월에 걸친 전 국민의 고통이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정의로울 수 없다. 입시 제도는 계급과 젠더의 교차로, 그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자녀 입시 뒷바라지는, 아빠의 경제적 능력과 엄마의 자녀 교육 전담이라는 중산층 가정의 성별 분업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100 대 71)로, 38개 회원국 중 월등한 부동의 1위다.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시민이다. 자녀 교육과 관련한 여성의 성역할은, 이러한 노동 시장 상황에 좌절했거나 경력을 보유한(경력 단절 여성) 고학력 여성들의 ‘적절한 일’로 간주되고 가족 전체의 성취로 여겨진다.

‘서울’은 식민주의의 전제이자 동력

나는 한국 사회가 식민주의 의식을 극복하지 않는 한, 서울 중심 사고와 정책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본다. 서울은 대한민국 근대성의 가시화된 장소로서 기능해야 하고, 그런 공간에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랜드마크로서 초고층 건물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오세훈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63빌딩과 2호선 잠실역의 555m짜리 롯데월드타워는 주변 경관을 무시하고 혼자 솟아 있다. 이 건물들은 우리 사회의 식민 콤플렉스를 상기시킨다. 이름난 글로벌 도시들의 마천루(摩天樓)처럼 ‘빌딩 숲’이 아니라 홀로 선 괴목이다. 마천루가 여러 개면 나름 ‘조화’가 있을 텐데, 롯데월드타워는 그렇지 않다. 롯데월드타워는 한국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데, 이런 종류의 순위는 중동 지역처럼 돈 많은 다른 후발 국가들에 의해 바뀔 것이다.

지난 세기, 서구와 탈아입구(脫亞入毆)를 염원했던 일본은 자본주의를 앞세워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지를 건설하고 침략 전쟁을 저질렀다. 그들은 식민지와 자국 민중을 희생시키면서 원 없이 근대성과 자본주의를 실험했고, 한편으로는 홀로코스트와 원자탄 피폭 등을 경험했다.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는 근대성을 성찰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들의 근대성에 대한 숙고는 ‘끝까지 가본 자’만이 갖는 특권적 인식이기도 하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의지와 옹호, 이에 대한 비판 담론도 모두 서구에서 생산됐다. 모더니티의 극복이 당연한 서구와 모더니티를 욕망하는 제3세계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 맥락의 다름은 이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과거 피식민 지역의 비극은 수탈과 모욕의 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후기(포스트) 식민 지역의 ‘진짜’ 피해는, 다시는 침략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이자 더 나아가 서구를 앞지르겠다는 추격(catch-up) 발전주의, 식민지 콤플렉스이다. 식민지 경험이 과거였다면, 이 콤플렉스는 현재 우리를 지배하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

‘국대’로서 서울과 추격 발전주의

추격 발전주의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군사 독재를 정당화했고 여전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로 꼽힌다. 이런 사회에서 환경운동과 돌봄의 가치를 주장하는 여성운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과 여성주의는 좌우, 진보·보수를 막론한 ‘진정한 정상 국가’ 건설 세력, 즉 한국 사회 전체와 싸워야 하는 사회운동이다. 추격 발전주의는 이제 심각한 지구 파괴의 문제가 되었다.

각국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을 따지는 평가에서 한국은 언제나 최하위권이며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으로 이름이 높다. 올해 역시 국제 기후단체들이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 2026’ 보고서에서 한국은 평가 대상인 전체 67개국 가운데 63위를 차지했다. 한국 다음의 ‘기후 악당’ 국가는 러시아, 미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뿐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서구와 대립각을 세우며 개발과 군사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과 함께 지구 파괴 국가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한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 추격 발전주의 국가들이다.

추격 발전은 국가 간 경쟁이므로 국가대표 격인 ‘최고의 하나(서울)’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므로 국내의 발전 격차를 줄이는 균형발전에는 관심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간절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추격 발전주의는 본디 실현 불가능한 과제이자 ‘뒤처진’ 사회의 특징이다. 서구는 이미 ‘그곳’에 도달했으므로 자신 외에는 극복해야 할 가시적인 목표가 없다. 이것이 역사는 단일 주체(서구)만의 직선적 발전이라는 역사주의이고, 그 외 지역은 서구의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the spatialization of historical time)이다. 발전 순서를 특정 공간에 할당하는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는 흔히 사용하는 언설, “○○은 서구의 1970년대” “○○은 서울보다 몇년 뒤처졌다”와 같은 일상적 권력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서구는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앞서 표현한 대로, ‘성찰 권력’마저 갖게 되었다. 그러나 후발 주자들에게 서구는 가시성이 너무나 뚜렷한 욕망의 대상이다. 에펠탑이, 도쿄타워가, 디즈니랜드가, 자유의 여신상이 그렇다. 추격 발전주의 논리에서 서울은 서구의 가시물을 실현해야 하는 장소이다. 더 크고, 더 높은 건물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 온 나라가 서울을 위해 존재하는 서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

혹자는 ‘K컬처’가 이미 식민주의를 극복했다는 증거이며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이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K컬처’에 왜 종묘와 같은 문화유산은 포함되지 않는지 묻고 싶다. 돈이 되는 ‘K컬처’는 일방적 찬사의 대상이지만 종묘 보존은 그렇지 않다. 예전 제국주의가 그랬듯 세계를 상대로 한 한국 문화 역시 결국은 돈의 지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돈이 되는 ‘K컬처’만이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은 로컬의 지역사로서 종묘 주변은 보존이 당연한데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속선상에서 나는 이재명 정부의 자주국방이 불편하다. 미국으로부터의 자주 자립을 넘어, ‘K방산’이라는 자부심과 군사주의로의 확산은 필연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와 오세훈의 시정(市政)은 닮은꼴이다.

유네스코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힘으로 종묘 앞 고층 건물 건설 계획은 전면 중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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