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 논설실장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람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 중 일부다.
학자들은 이 시에서 ‘님’은 한용운 선생이 스님이면서 독립운동가이고, 남성인 점을 들어 부처, 조국(또는 민족), 사랑하는 여인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필자가 학교에서 이 시를 배울 때는 시대적 배경, 선생이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들어 님은 조국으로 해석됐다.
따라서 님의 침묵은 ‘조국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의 불가피한 침묵일 수밖에 없다.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 데도 특정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는 ‘선택적 침묵’도 우리는 자주 목견한다.
물론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재앙의 문)’과 같은 사자성어들은 ‘말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침묵이 때때로 최고의 답변이 될 수도 있다(달라이 라마)’, ‘입을 열어 모든 의혹을 없애는 것보다는 침묵을 지키며 바보로 보이는 것이 더 낫다(링컨)’,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토마스 칼라일)’ 등 침묵에 대한 위인들의 주옥같은 명언도 많다.
▲반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감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도 적지 않다. 시대를 막론하고 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막강한 힘을 지닌다.
진실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은 신뢰와 믿음을 쌓고, 거짓말이나 상대를 비방하는 말은 불신과 증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말을 할 때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공자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고 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을 숨긴다고 한다”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한동훈 대표와 한 대표 가족 명의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방글이 작성됐다는 ‘당원 게시판 논란’으로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친윤계는 한 대표를 향해 “가족 개입 여부를 밝히라”고 공격하고 있고, 친한계는 “한동훈 죽이기”라며 맞서고 있다.
그런데 한 대표는 “어떻게든 당 대표인 저를 흔들어보겠다는 의도 아닌가. 그런 뻔한 의도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면서도 정작 가족 관여 여부에는 침묵하고 있다.
한 대표의 침묵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