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우주에 떠 있는 티끌 같은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에 대한 천문학자 고(故) 칼 세이건의 표현이다(『창백한 푸른 점』). 1990년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근처(약 60억㎞)에서 찍었다. 덕분에 온갖 사연으로 얽히며 살아가는 인류의 터전이 고독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작디작은 한 점, 지구는 세이건 박사가 고정된 카메라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 지구를 촬영하자는 발상의 전환으로 가능했다. 카메라가 손상되어 임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우려를 무릅쓴 도전이 가져온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었다.
토론 회피하는 대학 수업 여전
공감 과정 배제된 지식은 편협
정답의 감옥 갇힌 학생들 사고
인간 삶에 하나의 정답은 없어
‘창백한 푸른 지구’는 필자의 커뮤니케이션 관련 수업 첫 시간 오리엔테이션에 단골로 소환된다. ‘정답 지상주의’ ‘정답 편집증’에서 벗어나 ‘정답 대신 생각을 찾아가는 클래스’를 권유하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와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정답의 족쇄’를 내던져 버리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얘기해 보자는 의도이다. 정답 위주 교육 환경의 좋지 않은 영향은 대학 수업에서도 학생들을 침묵하게 한다. 왁자지껄하게 능동적인 청춘들이 수업에서는 수동형이 되고, 한 학기 내내 입을 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자발적인 토론을 호소하다 지친 교수가 지명할 의도를 보이면 교수의 눈길을 피하는 표정과 자세가 된다. 학생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부터 하나의 정답에 익숙해져서 생각이 틀릴까 걱정되어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토론의 부진과 부재는 주입식 교육의 병폐를 강화하고 자기 방식의 지식을 쌓는 기회를 가로막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주입된 지식은 머리에만 축적되고 가슴에는 남지 않을 공산이 크다. 생각과 감정과 토론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식이어야 가슴으로 내려가 공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공감의 여과 과정이 배제된 정보와 지식은 지혜로 발전할 수 없다. 그런 교육 환경이 미증유의 의료사태에 대해 합리적인 논쟁보다는 환자들의 생명을 두고 의사 전용 카페에서 “매일 1000명씩 죽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허망한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의료현장에 남아 절박한 환자의 생명을 치료하는 동료 의사의 신상을 공개하고 조롱하는 무자비한 린치도 마찬가지다.
정답 만능주의의 누적은 동료를 함께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이겨내야 할 경쟁자로 여기는 풍토로 만든다. 상대와 공생하는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과 실행을 체험하고 배양할 여지를 앗아간다. 당연한 상호공존의 바탕이 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기 위주의 입장에서 설정케 하여 건강한 인간관계의 형성과 발전은 물론이고 협력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의식과 책임감을 희박하게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하나의 답만을 내세우는 교육체제가 우리 학생들의 사고를 ‘정답의 감옥’에 가두어서 한 가지 관점만이 옳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창의성과 다양성의 바탕이 되는 ‘생각의 탄생’은 봉쇄되고 계발되지 못한다. 의대 진학에 올인하는 ‘의대 광풍’도 자신의 취향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정답을 고르는 능력에 따라 수입과 미래가 결정된다는 믿음이 불러온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준비반’이 만들어지고, 학원 차량을 보는 게 낯설지 않게 되었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보통 하나의 답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수학에 대해 2022년 최고 영예인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 허준이 박사는 “수학은 무모순(無矛盾)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2022년 8월 29일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고 설명했다.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한 가지를 찾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와 이해에 대한 판단에 하나의 정답을 적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답 지상주의와 한가지 관점만을 배양하는 교육 환경을 바꾸어 다양한 생각이 존중받도록 해야 한다. 교육을 탐사하는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어 사면팔방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가지 관점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풍토로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없다. 정답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입을 열게 하고 열패감에 짓눌린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유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