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반도체 등 수출기업에 고환율(원화 약세)은 대표적인 호재로 여겨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한국 제품의 값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와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해외에서 물건을 팔고 받은 달러화를 원화로 환전할 때 환율이 높으면 더 많은 원화로 바꿀 수 있어 재무제표상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증가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대다수의 수출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원자재를 들여오고 있고 우리 기업의 해외 생산 비중도 늘면서 원화 약세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구조로 산업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환시장 불확실성이 커져 환율이 급등하면 헤지 비용 역시 크게 오른다. 대표적 사례가 기업들이 가입하는 환 헤지 상품인 ‘환율(FX) 트리거’ 계약이다. 이 상품은 원·달러 환율이 미리 약정한 구간에 도달했을 때 사전에 약정한 특정 금액에 달러를 팔도록(수출로 벌어들인 대금을 원화로 환전) 설계돼 있는데 국내 기업 상당수가 1490원 선을 마지노선으로 계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예를 들어 A 수출기업이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0원 선일 때 1450원에 달러를 파는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하자. 이 계약이 유지되면 수출기업은 더 비싼 값에 달러를 팔 수 있어 환율 변동을 헤지할 수 있다. 문제는 환율이 수출기업과 은행이 미리 약정한 트리거 구간을 넘어설 때 발생한다. 만약 이 기업이 환율이 1490원을 넘어설 경우 달러당 1400원에 1000만 달러를 매각해야 하는 FX 트리거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하면 이 기업은 대규모 환차손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A사는 외국계 금융회사 B와 1490원, 1500원을 각각 트리거 구간으로 설정해 4000만 달러 규모의 통화 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기업들은 C은행과 1485.9원, 1495.5원을 트리거 구간으로 설정한 상품에 480만 달러 규모로 가입했다. 최근 환율이 1480원대까지 위협하면서 트리거 구간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주요 수출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수출기업들이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까지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FX 트리거 상품에 가입한 것인데 최근 환율이 치솟으면서 손실 구간에 진입한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더 오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소 수출기업들이 대거 피해를 본 ‘키코(KIKO)’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키코는 이름 그대로 ‘녹인(Knock-In)’과 ‘녹아웃(Knock-Out)’ 조건을 동시에 가진 통화 옵션 계약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옵션 기준선인 1300원을 넘어 1500원까지 치솟았는데 키코 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은 미리 약정해놓은 1100~1200원대에 달러를 팔아야 해 대규모 손실을 본 적이 있다. FX 트리거에 가입한 대기업의 경우 손실을 보전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에는 키코에 이어 또다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 외환 파생상품 전문가는 “주요 수출기업 중 환율 상승으로 얻는 이익 구간을 1380~1450원대로 설정한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 들어 예상보다 높은 레벨에서 환율이 형성되면서 결과적으로 환 헤지가 환차익을 갉아먹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FX 트리거 계약이 발동해도 기업들에 미치는 손실은 크지 않다는 게 금융기관들의 해명이다. C은행 관계자는 “이번 파생상품은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발생을 제한해둔 상품”이라며 “기업들도 다층적 환 헤지 구조를 설계해둬 트리거가 발동해도 손실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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