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질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다

2025-09-12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

여러분은 ‘○○’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답은 없습니다만, 아마 많은 분들이 ‘자식’을 넣어 읽으셨을 것 같습니다. 매우 귀엽거나 사랑스럽다는 의미의 관용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식을 형용하는 말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죠. 얼마나 귀한 존재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까요? 그 마음은 차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여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둔 아버지 존(제임스 노턴)이 있습니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은 초롱초롱한 눈과 통통한 볼을 자랑하는 귀여운 남자아이입니다. 존과 마이클은 함께 동화책을 읽고, 공원을 거닐고, 놀이기구도 타는 둘도 없는 부자지간입니다.

어머니는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마이클이 태어난 지 6개월 됐을 때 러시아로 떠났거든요. 그 후론 행방을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 등원을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다 마이클이 묻습니다. “우리 엄만 어딨어?” 존은 답합니다. “말했잖아. 엄마는 떠나야 했다고.” 다시 마이클이 묻습니다. “멀리멀리?” “그래. 멀리멀리.”

존은 괴롭습니다. 자신 역시 아들로부터 ‘멀리멀리’ 떠나야 하거든요. 존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은 바로 아들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는 일입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입양을 지원한 여러 가정에 방문해 둘러봅니다. 그는 자신이 해줄 수 없던 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부모와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그런데 여러 집을 둘러봐도 영 마음에 차는 곳이 없습니다. 그가 그렸던 ‘평범한 가족’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 각각 마음을 꺼림칙하게 하는 면모가 보이기도 합니다. 입양한 자식을 ‘남의 애’라고 칭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아이에게 물질적 지원은 해줘도 정서적 지지는 해주지 못할 것 같은 가족도 있습니다.

존은 조급합니다.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그는 입양기관에 이같이 털어놔요. “처음에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족이 좋을지 딱 보면 알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틀리면요? 제가 만약···.”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일이 얼마나 큰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대사입니다.

존의 직업은 창문 청소부입니다. 깨끗이 닦인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안온한 일상 공간이 보입니다. 반면 존의 일상은 조금씩 무너져갑니다. 그는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어 소파에서 쉬거나 자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버지가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 간다는 것은 눈치챈 걸까요. 잠든 아버지를 향해 냅다 동화책을 던져 깨우던 아이는, 이제 조용히 담요를 덮어줍니다.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에 대해 알려줍니다. 공원에서 죽은 딱정벌레를 발견하곤 죽음에 대해 설명해요. “딱정벌레는 이제 없어. 몸만 남은 거야”라는 존의 말에 “슬픈거야?”라고 되묻는 마이클의 천진난만한 질문은 그 어떤 말보다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슬픈 일은 아니야. 그냥 없을 뿐이야.”

부자는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아버지의 나이에 맞춰 34개의 초를 꽂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하나의 초를 더 쥐여줍니다. 서른다섯 번째 생일은 함께 맞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아버지의 가슴은 미어집니다. 슬픈 배경음악이나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출 하나 없지만, 작별을 앞둔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이 영화는 내내 이렇듯 차분한데, 마음에 크고 긴 파동을 일으킵니다.

존은 과연 어떤 집을 마이클의 가족으로 택했을까요. 영화를 보면 누구나 자연스레 눈치챌 것 같습니다. 아이를 ‘터널 끝 빛 같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마이클에게 가장 좋은 가족이 되어줄 테니까요.

<스틸 라이프>(2014)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른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7년 만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파솔리니 감독은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기 전 갓난 아들을 위해 새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고 합니다.

러닝타임 96분. 왓챠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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