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술의 경이와 불안

2025-04-20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예술이 미술 지형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달리(DALL·E)’ ‘미드 저니(Midjourney)’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같은 AI 기반의 이미지 생성기는 누구나 접근하기 쉽게 설계되어 디자이너나 예술가로의 도전을 가능하게 해준다. 명령어 몇 개만 입력해도 빠르게 시각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과 지시문이 정교할수록 이미지와 영상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기이함과 낯선 시각적 충격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미술의 경계 확장하는 AI 작품

소더비 경매에서 15억 낙찰도

몽환적 복합감정 불러일으켜

‘기계 창의성’ 철저히 사유해야

AI가 생성한 예술이 진정한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 옥션과 같은 제도권은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런던의 공공예술기관 서펜타인 갤러리는 2020년부터 예술과 첨단 기술을 주제로 ‘미래 예술생태계(FAE)’ 보고서를 매년 발간한다. 게티미술관은 올해 인공지능과 사진 편집 도구를 활용한 마티아스 사우테르 모레라의 AI 기반 작품을 처음으로 구매하였다. 코스타리카 카우보이 문화 속에 숨겨진 동성애 이야기를 실제 인물의 익명성을 해치지 않고 재구성한 연작이다. 게티 측은 AI가 사진의 진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서는 로봇 예술가 아이다(Ai-Da)가 그린 초상화가 약 15억 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었고, 올해 3월 크리스티에서는 ‘증강 지능’이라는 주제로 AI 생성 디지털과 영상 작품들을 경매에 올렸다. 이미지의 무단 사용, 저작권 침해 등을 주장하며 경매 취소를 촉구하는 공개서한(6500여 명의 서명)에도 불구하고 34점 중 28점이 낙찰되었다. 국내에서는 코리아나미술관에서 ‘합성 열병’이라는 AI 관련 국제 전시가, 선화랑에서는 AI 작가 그룹 오비어스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1만5000점의 역사적 초상화를 데이터로 학습하여 AI 인물화로 주목받은 오비어스는 이번에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무의식을 결합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튀르키예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있는 작가다. 2022~23년 뉴욕현대미술관은 그의 AI 기반 작품을 전시하고 소장함으로써 AI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신생공간 푸투라 서울에서는 개관전시로 레픽 아나돌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63빌딩 1층 동편 로비에는 현재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처럼 대형 스케일로 연출되지만 아나돌의 작품은 물성 대신에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재료 삼아 영상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그의 스튜디오는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구성한 소프트웨어(DCGAN, PGAN, StyleGAN)와 하드웨어(NVIDA의 DGX)를 결합하여 작업하고 있다. 잘 알려진 ‘기계 환각’과 ‘비지도 학습’ 시리즈는 도시·자연·뇌의 이미지 등 오픈소스뿐만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코넬대, MoMA 아카이브와 같은 방대한 데이터를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으로 학습시켜 영상으로 구현한 것이다. 시각과 청각(소리), 후각(향)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수집하며, 각 프로젝트는 기관과 지역 기반의 데이터를 활용하고 제작 과정도 공개한다.

생성형 AI의 놀라운 성과는 알고리즘·데이터·연산, 그리고 추론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다. 이러한 인공지능 매체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가상과 실재, 극사실과 초현실이 뒤섞이면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몽환적이고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기존 시각 언어의 일관성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딥러닝의 ‘스타일 전이’ 기술 때문이다. 이를 기계적 창의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작가들은 많은 경우, 기계 논리와 인간 감정 사이의 긴장감을 의식하며 작업한다. 기계가 꿈을 꾸는지, 인간이 꿈을 꾸는지 그 경계는 모호해지며, 이로 인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황홀경이 동시에 반영된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절단된 동물 사체(‘어머니와 아이’)를 보면서 충격과 경이, 동시에 다가올 세상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현대미술은 또 다른 가공할 실체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기술과 인간의 경쟁, 기계의 인간화, ‘포스트 휴먼’이란 표현이 실감 나는 세상이다. 예술은 언제나 미지의 경계를 탐색해왔다. 설령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구현한다 하더라도 예술적 성취는 인간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과제는 이 최전선을 회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유하고 비판하며 다시 사유하는 데 있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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