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한 터전을 일궈내는 이들을 만나 ‘왜 문학을 하는지’ 듣는다.

‘녹색광선’ 출판사의 책을 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예뻐야 돼, 뭐든지 예쁜 게 좋아.”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숲길 인근에 위치한 출판사 사무실 찾아가며 이 생각을 했다. 지난 8일 만난 박소정 대표는 실제 자신이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이 “예뻐야 돼”라고 했다.
책 좋아하는 이들, 특히 30~4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출판사의 책은 표지부터 특이하다. 종이가 아니라 선명한 색감의 패브릭으로 쌓인 양장 형태다. 책 제목과 저자, 옮긴이 정도의 정보 외에는 간단한 크로키 형태의 그림 혹은 사진 이미지가 중간에 박혀있는 모양새다. 이미지는 패브릭 표지 위에 덧댄 방식이라 업체에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붙인다고 한다.
세련되게 ‘책꾸’(북커버 등을 이용해 책을 꾸미는 놀이 문화)를 한 것 같은 표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효과가 있다. 예쁘다 보니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좋다. 지금까지 14권, 특별 에디션을 포함하면 20권이 조금 넘는 책을 냈는데 모두 5쇄 이상 찍었다. 일부 인기가 좋은 판본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정가보다 높게 거래되기도 한다.
겉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2019년 첫 책으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낸 이 출판사는 주로 외국 고전문학을 출판 대상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역자 섭외도 고심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유명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는 책을 다룬다는 것이 녹색광선의 모토”라며 “내가 평소에 문학을 좋아한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고전 문학을 대상으로 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2019년 이전에는 출판업계에서 일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원고를 받을 작가도 없었다. 판권 비용 등을 생각하면 저작권이 풀린 ‘퍼블릭 도메인’ 작품을 다루는 것이 방법이었다.

출판 장르를 정한 뒤엔 디자인을 고민했다. 박 대표는 “이전 직장이 광화문에 있어서 교보문고를 자주 갔다. 아트북 코너에는 아름다운 표지들이 많았는데, 당시 국내 소설의 단행본은 그런 표지가 별로 없었다”며 “패브릭 표지를 알게 됐고 준비했다. 종이 제본보다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들어 가족조차 ‘그렇게 하면 망한다’고 했는데, 망할 생각으로 한 번 해봤다”고 말했다.
책마다 패브릭 구성도 다르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눈보라>는 겨울 이미지의 책이니 표지 패브릭에 기모가 많이 들어갔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은 나일론을 많이 사용해 표지를 만질 때 시원한 느낌이 든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 그의 영화 제목 중 하나에서 따온 ‘녹색광선’으로 출판사 이름을 짓고 첫 책을 냈다. 출판사의 정체성에 맞춰 표지는 초록색이었다. 신생 출판사의 책이지만 처음부터 잘 팔렸다. 가장 많이 판매된 <결혼·여름>은 곧 17쇄를 찍는다. 그는 “책은 생각을 물성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속도의 시대에 책을 사는 것은 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행위도 된다”며 “잡히지 않는 생각을 아름다운 물성에 담은 것이 우리 책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인 출판사이다 보니 사무실은 박 대표의 취향이 많이 반영됐다. 와인 잔, 조명, 여러 장의 LP판,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빈티지 턴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취향이 반영된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으로 낸 책으로 문학 출판사로서 작지만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지게 됐다.
박 대표는 “문학이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하는 장르다. 반듯하지 만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삶의 본질적 가치를 곱씹게 하는 것이 문학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문학책으로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광선이 출판한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