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워하지도 과거에 집착하지도 말고 미래로 가야"

2025-08-11

해방둥이 시인 나태주와 X세대 딸 나민애 교수의 광복 80주년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란 뜻깊은 해지만, 국내 정치적 혼란 때문인지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다. 요란한 이벤트보다 차분하게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로 살리면 좋겠다. 1945년에 태어나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해방둥이 시인' 나태주(80) 선생과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현대 시문학을 전공한 딸 나민애(46)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를 함께 만났다.

생계형 친일과 출세형 친일 구별

인구 2~3%만 제대로 항일 투쟁

한·일 소득 역전, 한국의 기적

한국인, 위기 때 일어서는 저력

젊은 세대, 일본 콤플렉스 벗어

친일·반일 프레임, 시대 안 맞아

일본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1948년 대한민국 출범과 1950년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민주화를 모두 경험한 아버지 세대와 중진국 초입 무렵이던 1979년에 태어나 선진국 시대를 향유하는 딸 세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해방 이후 되찾은 우리말과 한글을 누구보다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충남 공주시 '나태주 풀꽃문학관'에서 만났다. 부녀 인터뷰는 부친인 나 시인의 어린 시절 얘기로 시작했다.

-독립운동가 윤동주(1917~1945) 시인이 해방을 약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 17일 태어난 나 시인은 5개월 만에 해방을 맞으셨군요.

"충남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 24번지가 고향입니다. 다섯달 정도 일본 치하에서 살았으니 나도 일제 때 사람인 셈이죠. 아버지가 열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외할아버지의 데릴사위로 들어갔어요. 어머니 성(김씨)을 따르던 당시 일본식 풍습에 따라 내 이름은 김수웅(金秀雄)이었지. 8·15 이후 외할아버지가 세상이 바뀌었다며 데릴사위를 파양하고 본래 성(나씨)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김수웅이 나수웅(羅秀雄)으로 됐어요. 일제 치하에서 우리 집안도 일본식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했다고 들었어요. 당시 시세를 따라간 것이겠지만 어쨌든 어렸을 때 잠시 나도 모르게 일본 사람으로 살았던 거죠. '수웅'이 일본식 '히데오'라며 아버지가 1961년에 한국식 이름 나태주(羅泰柱)로 바꿔주셨어요."

-광복 직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떤가요.

"세 살이던 1948년에 외할아버지가 늑막염에 걸렸는데 페니실린도 못 써보고 돌아가셨대요. 외가는 서천군 시초면 초열리 11번지였는데 외할아버지가 빚을 많이 져서 집도 재산도 다 날린 상태에서 외할머니가 혼자 되셨어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어요."

입신출세 위한 적극적 친일도 많아

-친일파로 분류된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은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는데요.

"미당은 친일한 게 아니라 순응(順應)하고 순천(順天)하는 입장이었다고 주장했는데 궤변이죠. 시로는 참 훌륭한 분인데 친일을 넘어 부일(附日)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요. 미당은 단순히 친일 시가 아니라 일본을 찬양하고 일본군 입대를 독려한 시, 가미가제(神風)를 칭송한 시를 썼죠. 입신출세를 위해 쓴 시가 증거로 남아 평생 걸림돌이 됐어요."

-'생계형 친일'도 많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일제 시대를 산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솔직한 고백일 수 있어요. 일본의 위세가 강했던 때이고 외부 정보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친일 인명사전을 만들 때도 생계형 친일과 출세형 친일을 구별했지요. 사실 당시 일본에 대한 태도는 부일·친일·극일·항일로 나뉘었어요. 완전히 일본에 빌붙은 부일은 친일보다 더 심하죠. 극일은 일본을 이기는 게 아니라 참는 거예요. 그 시대엔 부일·친일·극일이 많았고, 항일은 극소수였다고 봐요. 매헌 윤봉길 의사, 안중근 선생, 이육사 시인처럼 당시 2~3%만이 제대로 항일 투쟁을 했다고 보죠."

2024년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23년에 사상 처음 일본을 추월했다. 젊은 세대는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듯하다.

과거를 시간 흐름에 맡겨보면 어떨지

-기성세대, 특히 정치권은 아직도 친일·반일 프레임에 갇혀 있습니다.

 "한국처럼 식민지를 경험한 인도와 비교해 봅시다. 인도에는 우리 삶의 비극을 얼룩으로 보고 역사적 사안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이면 몰라도, 자손들까지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분위기와 안목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에 억울하게 당하고 분개했던 당사자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게 가능했겠죠.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콤플렉스를 벗었다면 젊은이들이 보기엔 일본 식민 지배로 인한 얼룩은 어른들 세대, 이전 세대의 것이고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도 조금 더 지나면 영국 식민지를 경험한 인도가 그런 것처럼 일제 침략기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면 어떨까요. 올해가 광복 80주년인데 20년이 또 지나면 우리도 인도처럼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 

-올해는 또 한·일 관계 정상화 60주년이기도 합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도 탔는데 우리가 일본 앞에서 기죽을 필요가 있나요.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일본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미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과거를 자꾸 들먹거리지 말고 과거를 빙자해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스스로 반성하고, 남 탓하지 말고 나에게서 가능성과 좋은 점을 찾으며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잘 되면 제 탓이오,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생각의 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못해도 내 탓이고, 잘해도 내 탓이고,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여한이 없어야죠."

-다시 20년이 지나면 광복 100주년인데요.

 "대한민국의 오늘은 기적입니다. 지금 남북 분단에다 남·남 갈등도 심하지만, 자정작용이란 것을 말하고 싶어요. 인도의 지도자 간디(1869~1948)가  '인간성은 바다와 같아서 일부가 더러워졌다고 바다 전체를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지요. 그의 말처럼 한국인에겐 지금이 위기이고 바닥인 것 같아도 이 바닥을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이 있어요. 한국인의 한(恨)이라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에너지를 숨기고 있는 슬픔이에요. 한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그냥 원수 갚고 마는 게 아니라 자기를 승화하는 쪽으로 슬픔과 억울함을 풀지요. 마음에 샘물을 품은 사람이 많아야 하고, 맑은 물을 스스로 생산해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이 많아야 돼요. 지도자들이 본을 보이면 바로 됩니다. 좀 지나면 아이도 낳을 거고, 내가 아닌 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거고, 상대를 배려할 거고, 어떤 공동선(共同善)을 생각하는 쪽으로 갈 거에요. 한국인은 미련하지 않다는 것이 내 결론입니다."  

친일·반일 프레임은 시대에 안 맞아

2007년 교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장장 43년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아버지에 이어 서울대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딸 세대의 생각을 이어서 들어봤다. 나 교수는 "국문학을 선택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각각 '유퀴즈' 방송에 출연한 유일한 부녀 기록을 세웠다.

-젊은 세대에게 광복과 독립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나요.

"광복·독립을 역사적 사실로 배웠으니까 기록과 역사로 받아들입니다. 1970년대생이라 중·고 시절에 일본에서 제작한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 그런지 일본이 역사적으로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일본의 선진 대중문화를 접한 세대여서 일본에 대해 '양가감정(兩價感情)'을 갖고 살아온 것 같아요."

-부모님 세대는 보릿고개를 경험했습니다만.

"아버지와 엄마가 배곯던 얘기를 여러 번 하셨어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먹으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하시더군요. 물리적·물질적으로 참 고생이 많으셨겠다 싶어요. 그래도 그 시절엔 뭔가 사람 사는 냄새가 좀 있었고, 뭔가 앞으로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조금 더 많았던 시대였겠다는 생각도 하죠."

-일본 콤플렉스가 남아 있나요.

"(세상을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보는) 그런 의미의 일본 콤플렉스는 없는 것 같아요. 위안부나 징용 문제에는 감정적·이성적으로 공감하는데 그렇다고 일본에 대해 반일·친일로 접근하는 거는 맞지 않아 보여요. 지금 일본의 힘이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이나 해악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힘이 이제는 예전보다 좀 달라지지 않았나요. 누구에게 친일이냐 반일이냐 하는 것은 시대에도 안 맞고 과장된 것 같아요."

-식민지에서 독립해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자질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 자체를 좋아합니다. 조금 많이 배우고 잘사는 분들이 '내 아이는 외국에 보내서 미국 시민 만들고 싶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생각 안 하고 여기서 키울 겁니다. 다만 사람들이 실수할까 두려워하고, 날이 선 채로 화낼 상대를 찾고, 상대에게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것은 좀 걱정스러워요. 가뜩이나 살기도 힘든데 서로 좀 너그럽게 봐주면서 함께 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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