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3일 밤에 나는 웹소설에 관해 쓰고 있었다. 급히 끝내야 하는 일이라 잠을 포기했는데, 덕분에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면서 ‘깨어 있는’ 시민이 되었다.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소식이 많아서 뉴스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새벽이 될수록 의구심이 치솟았다. ‘아니… 이런 시국에 내가 지금 소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래도 되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그 뒤로도 물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던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으니, 현대사가 업데이트되는 동안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가치 있게 표현하는 일을 계속했다. 매일매일 ‘이게 뭐야?’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고 생각했다. 블랙코미디 같은 농담과 눈가가 찡해지는 일화를 잔뜩 접했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일 때 어떤 깃발을 들고 가는지 유심히 보았다. 깃발 만들기가 유행이 된 덕분에 온갖 종류의 전국적 연합 깃발이 휘날렸다. 예전에 선배들이 말하길, 행진할 때는 ‘깃돌이’를 따라가라고 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이 소속된 깃발을 찾으라는 거였다. 12월 내내 도로에는 내가 따라갈 만한 깃발이 수없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전국길치연합’ 깃발에 크게 소속감을 느꼈다. 길치들끼리 모여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하기는 했다. 모두 길치면 엉뚱한 길목에서 헤매지 않을까. 아니면 정해진 경로를 무시하고 무법자처럼 나아가는 걸까. 누가 만드셨는지 모르지만 전국길치연합 깃발에는 “우리의 걸음이 길이 되리니”라고 쓰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깃발을 애호하는 취향은 나라가 길러준 것이다. 대한민국국기법 제5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학생 때는 정기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다. 교실 맨 앞에는 언제나 태극기가 있었다. ‘맹세’ 시간이 되면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나팔 소리와 함께 이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지금은 문구가 다르지만 내가 익숙한 것은 이쪽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규정상 국기는 언제나 존엄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물건이다. 형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 제거, 오욕, 비방하면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태극기나 태극문양 등은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방법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사용이 금지된다. 만약 국기가 훼손되면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기존 국기는 쓰레기로 버리면 안 되고, 소각하는 등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요약하자면 국기는 언제나 국민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자극하는 모습으로 휘날려야 한다.
20세기 동안 태극기는 깃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중하게 쓰였던 것 같다. 그리고 21세기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표현이 크게 달라졌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겠다는 내용으로. 지금 내게는 태극기가 아니어도 따를 만한 깃발이 많고, 이제 K팝을 시위 현장에서 부르듯 예전 노래를 가볍게 차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