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터프라이즈'처럼…한국 해군의 전설이 될 숫자 325 [Focus 인사이드]

2024-11-28

군사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엔터프라이즈라'는 군함의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지난 2009년 재래식 동력함인 CV 63 키티호크가 퇴역하면서 미국의 모든 항공모함이 핵 추진함으로 구성됐을 만큼 이제는 의의가 많이 감소했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최초의 핵 추진 항공모함이라는 영예를 갖고 있다. 즉,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한 항공모함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 거함이면 핵 추진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만 해도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그래서 건조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가자 미국 해군은 이후 2척의 후속 항공모함을 재래식 동력함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정책을 우왕좌왕하도록 만들었을 만큼 엔터프라이즈는 당대를 초월한 괴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1961년 취역해 51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한 뒤 2012년 퇴역한 장수 군함이기도 하다.

엔터프라이즈는 활동 기간이 길었던 만큼 수차례에 걸쳐 실전에 투입돼 활약했다.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했을 때 등장해 무력시위를 벌이며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처음 언급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그런데 많이 알려지고 익숙한 엔터프라이즈인 CVN 65는 미 해군에게는 8번째 엔터프라이즈다. 즉, 전에 사용하던 함명을 승계한 것이다.

통상 함명은 인물명·지역명·역사적 사건 등으로 짓는데, 그렇게 작명된 수많은 이름 중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가치를 지닌, 특별한 함명은 별도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우리 해군의 충무 또는 이순신 같은 함명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런 영예로운 함명을 지닌 군함이 퇴역하면 새로운 군함이 이름을 승계하는 전통이 있다. 미 해군에게 엔터프라이즈가 그렇다.

미 해군이 가장 많이 계승한 함명이며 또한 많은 전공을 세웠던 선명이기 때문이다. 1775년 5월 18일, 독립 전쟁 당시 영국으로부터 노획한 70t짜리 범선이 엔터프라이즈라 불린 뒤 여러 차례 이름이 승계됐고, 2028년 취역할 예정인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 3번 함인 CVN 80이 9번째 엔터프라이즈로 명명된 상태다. 따라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엔터프라이즈가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 해군보다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선 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 제2차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활약한 백두산함을 제외하면 그런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함정이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함명은 아니지만, 함번으로 한국 해군의 전설이 될 자랑스러운 이름이 있다. 1999년 일어난 제1연평해전과 2009년 벌어진 대청해전에서 연거푸 대승을 이끈 '참수리 325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참수리 325정의 승전이 빛나는 이유는 아군의 피해는 거의 전무한 상태로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6·25 전쟁 이후 남북 해군 간 최초의 정면충돌이었던 1999년 제1연평해전은 한국 해군의 자부심이 됐고, 2009년 대청해전의 승리는 2002년 잘못된 교전 규칙으로 말미암아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제2연평해전의 아쉬움을 한 방에 날려 보낸 쾌거였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지구 상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 중 하나지만, 중동 같은 곳과 비교하면 역설적으로 6·25 전쟁 이후 실전이 적은 편에 속한다. 물론 충돌보다 평화의 시간이 당연히 좋고, 그렇게 유지돼야 한다. 따라서 참수리 325정처럼 교전을 벌이며 무공을 세운 사례가 흔치 않다. 이런 이유로 함번이 정식 함명이 되기는 곤란한 점이 있겠지만, 한국 해군에게 325정은 단지 함번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참수리 325정은 33년 동안의 활약을 마치고 2022년 12월 30일에 퇴역한 상황이다.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처럼 참수리 325정이 후속함정에게 함번이나 함명으로 승계돼 그 용기와 기백이 영원히 알려지기를 원한다. 마침 해군도 퇴역 참수리 325정을 해외 공여나 폐기하지 않고 보관 중인데, 향후 활용 방안을 놓고 여러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좋은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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