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2025-09-08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원칙이다. 프랑스는 헌법 제1조에서 ‘라이시테’ 즉 비종교성을 규정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국교 금지와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다. 전자의 경우 종교를 사적 신앙으로 한정해 공적 영역에 대한 침투를 금지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후자의 경우 종교의 자유에 좀 더 강조점이 있다. 예컨대 무슬림의 신념에 따른 히잡 착용이 프랑스에서는 법적 규제 대상이 되지만 미국에서는 개인의 종교적 표현이니 규제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미국 모델에 가깝다. 헌법 제20조 제1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제2항은 국교 금지 및 정교분리를 규정한다.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제도적으로 정교분리를 규정하는 것이 논리적이고 깔끔한 해법 같지만, 종교와 공적 영역이 충돌하는 실제 상황에서 양자의 조화가 쉽지만은 않다. 예컨대 공립학교 운동부 코치가 경기 후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인가 아니면 공무원의 종교 중립 위반인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개인의 행위를 정부가 허용할 때 정교분리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고 그 인식을 정당화할 근거도 많지만, 수정헌법 제1조 때문에 정교분리 원칙은 연방대법원에서 끊임없이 다투어져왔다. 대법원은 1971년 레몬 사건에서 정부 정책의 목적은 비종교적이어야 하고 그 주된 결과가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억제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제시하며, 주정부의 종교 사학에 대한 지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04년 로크 사건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해, 주정부 장학제도에서 신학생을 제외한다 해서 종교의 자유 침해는 아니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최근 보수 성향 연방대법원은 정교분리를 무색하게 하는 판결을 잇달아 했다. 교육비 세금공제 대상에서 종교 사학 등록금을 제외한 주정부의 조치(2020년 에스피노자 사건), 주정부 바우처를 종교 사학 등록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 조치(2022년 카슨 사건) 등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

어쨌든 미국에서는 종교에 관한 정부의 정책이나 공직자의 행동이 정교분리라는 측면에서 헌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한국은 정교분리 원칙이 진지한 시험대에 오른 적이 없다.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 보조, 특정 종교의 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령, 일부 개신교가 주최하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이 성경 구절을 읽어도 되는지 같은 문제가 정교분리 관점에서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지금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에는 종교가 결부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주말 도심에서 종교인의 정치적 집회를 볼 수 있고 특정 종교가 특정 정당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언급해 소동이 벌어졌다. 특정 종교가 동성애를 문제 삼아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것도 오래된 일이다.

이런 종교의 모습에 대해 본질로부터의 일탈이라는 관점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고 힘없는 사람과 함께하라는 것인데 왜 교회는 혐오와 배제를 말하고 권력과 결탁하냐는 식의 지적이다. 그런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국가와 사회에서 걱정할 일이 아니다. 부와 권력의 추구를 교리로 삼는 종교가 있다 한들 내심의 영역에만 머무르면 문제 될 일이 없다.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 종교집회를 찾거나 종교단체가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 자체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정교분리의 선을 명확하게 긋고 그 선을 넘는 행위를 규제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교가 특혜를 원래 제 것처럼 주장하는 일이나 종교의 이름으로 벌이는 반사회적 행태, 실체도 불분명한 ‘종교계 의견’이 공론장에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종교의 관점에서 한국은 특이한 사례라는 얘기를 듣는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가 공존하지만 종교를 이유로 한 내전이 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하지만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 간의 심각한 갈등이 없었다는 점이 정교분리라는 원칙 문제를 가볍게 넘겨온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종교와 공적 영역의 선 긋기와 지키기를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해야 하고, 차별금지법과 같은 공적 영역에 종교가 발을 들이면 그 부분에서는 말을 섞어주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정교분리를 선언한 헌법 정신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고,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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