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펜 악몽에 신음 중인 KIA가 극약 처방을 내렸다. 마무리 정해영을 2군으로 내렸다. 마무리의 전력 이탈은 만회하기 어려운 손실이지만, 지금 상태로는 1군 경기에 기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극약처방은 첫날부터 실패로 돌아갔다. 올 시즌 불펜에서 가장 꾸준했던 전상현을 뼈대로 삼아 비상대책을 가동했는데, 그 전상현이 무너졌다.
이범호 KIA 감독은 17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정해영의 1군 엔트리 말소를 알리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보이더라. 팀 자체가 계속 이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해영을 빼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정해영의 임시 대체자로 전상현을 지목했다. 9회 세이브 상황이 되면 전상현을 올려 경기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그뿐 아니다. 9회 이전 쫓기는 상황에 몰리면 그때에도 일단 전상현을 올려서 막겠다고 했다. 전상현이 내려간 이후 이닝은 조상우, 최지민, 성영탁, 한재승 등 그날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라도 승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정해영의 빈 자리를 나머지 불펜 모두를 활용해 최대한 메운다는 ‘집단 마무리’ 구상이지만, 결국은 전상현에게 부담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9회 마무리 역할을 우선 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경기 상황에 따라 9회 이전에도 등판해서 위기를 막아야 한다. 17일 두산전이 그랬다. 1-0,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가던 KIA는 8회말 1사 1루에서 전상현을 올렸다. 어떻게든 리드를 지켜달라는 벤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상현은 첫 타자 양의지에게 2루타를 허용하는 등 만루 위기에 몰렸고, 밀어내기로 동점을 허용했다. 뼈아픈 적시타로 역전까지 허용하며 무너졌다.
비상계획은 가동 첫날부터 무너졌지만, 당분간은 전상현 중심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상현만큼 믿을 수 있는 불펜 투수가 지금 KIA에는 없다. ‘국가대표 마무리’ 출신 조상우는 잃어버린 구속을 올해도 되찾지 못했다. 후반기 내내 부진하다 2군으로 내려갔고, 최근에야 1군 복귀했다. 좌완 최지민은 제구 불안으로 여전히 기복을 보이는 중이다. 성영탁, 한재승 등도 경기 후반 가장 중요한 순간 공을 맡기기는 쉽지 않다.
정해영이 돌아오기 전까지 전상현이 ‘불펜 전천후’와 마무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뒤에 아무도 없다는 압박감도 떠안아야 한다. 17일 패전을 차치하더라도, 장기간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클 수 있다.

정해영은 말소 시한 열흘이 되는 오는 27일까지 1군 등록이 안 된다. 그 사이 KIA는 7경기를 치른다. 전상현과 다른 불펜 자원들로 7경기를 버티는 게 우선 과제다. 이 기간을 버텨낸다 해도 정해영이 빠르게 돌아오지 못한다면 남은 시즌 전상현이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워진다. KIA의 5강 싸움도 그만큼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해영은 전반기 막판부터 난조를 보이더니 후반기 들어서는 8경기 7이닝 7실점으로 크게 무너졌다. 결과뿐 아니라 내용까지 안 좋았다. 말소 전 마지막 경기였던 16일 두산전은 직구 평균 구속이 142㎞까지 떨어졌다. 이 감독이 정해영 말소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몸 상태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데도 구속이 갑자기 5㎞ 이상 하락했다.
이 감독은 열흘 시한이 지난 뒤 정해영의 상태를 보고 복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27일까지 정해영이 얼마만큼 구위를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KIA의 5강 싸움은 물론 정해영 본인에게도 열흘의 의미가 아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