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 ⚾ 부러운 우승 이야기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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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많은 것이 예전같지 않은 명절이었습니다. 폭염경보와 추석을 함께 했고, 높은 물가에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연휴만큼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생각하지 않기 어려웠어요. 명절 직전 20%로 역대 최저치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덕목인데도, 우리에게는 없는, 갖고 싶은 리더십 이야기를 한 편 들고 왔어요. 이용균 기자의 기사 읽고 다시 만나요.

격노 대신 '미안하다'

2024. 9. 18. 이용균 기자

모든 우승은 특별하고, 스포츠 역시 시대를 반영한다.

2024시즌 KBO리그 정규시즌 우승 팀이 KIA 타이거즈로 확정됐다. KIA는 지난 17일 인천 SSG전에서 0-2로 졌지만 2위 삼성이 두산에 4-8로 지면서 남은 경기를 다 지더라도 1위를 지킬 수 있게 됐다. KIA는 해태 시절부터 11번 한국시리즈에 올라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KIA의 전력은 강하다고 평가됐지만 지난해 6위 팀이었다. 게다가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기존 감독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경질되는 일도 벌어졌다. KIA는 감독 없이 시즌 준비를 시작했고, 선발 투수 5명 중 4명이 부상을 당했고, 4번 타자가 돌아가며 다치는 바람에 함께 선발 출전한 경기가 시즌 절반을 겨우 넘는 상황에서도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그 중심에 이범호 신임 감독이 있다. 이범호 감독은 2000년 한화에서 데뷔해 2009년까지 뛰었고, 2011~2019년 KIA에서 뛰었다. 2010년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유니폼을 입었다. 국가대표 3루수로도 활약했지만 '주인공'이라기보다는 '2인자'에 가까웠다. 한화 시절엔 김태균 뒤에 있었고 KIA 이적 뒤에도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그늘에 있었다. 이 감독을 잘 아는 관계자는 "어쩌면 그래서 준비가 잘돼 있었다. 이론적으로 매우 꼼꼼했고, 치밀했다"고 말했다.

이범호 감독(가운데)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마리나파크에서 2024 KBO 리그 정규 시즌 우승 자축 행사를 즐기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이범호 감독은 KBO리그 최다 만루홈런 기록을 가졌다. 정규시즌에서 17개를 때렸고, 포스트시즌에서 1개를 더했다. 만루홈런은 '클러치'의 상징이다. 만루 기회는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결과다. 준비가 잘돼 있고, 대비가 잘돼 있었다는 뜻이다.

감독 역시 갑작스레 맡게 됐다. 카리스마 넘치는, 타이거즈 출신의 쟁쟁한 스타들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타격 코치와 2군 총괄을 거친, 초보 감독 이범호 감독으로 결정됐다. '감독' 자체가 목표였던 과거 몇몇 사례와 달리, 감독이 되면 어떤 야구를 할지 준비가 돼 있었다. 현역 때 그랬던 것처럼, 찾아온 만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초반부터 줄곧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위기가 수시로 찾아왔다. 선발 투수 5명 중 4명이 다쳤고, 마무리 투수가 다쳐 석 달을 비웠고, 중심타선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가끔 흔들렸지만 꼭 2위 팀과 맞붙을 때면 두들겨 패듯 이겨 멀리 떨어뜨려놨다. 그 배경에 '격노하지 않는, 미안하다 리더십'이 존재한다.

이범호 감독은 화를 내지 않는다. 올 시즌 미팅은 딱 한 번, 6월 말 롯데와의 3연전 뒤였다. 14-1로 이기던 경기를 15-15 무승부로 마무리했던 경기가 그때 있었다. 다음날 이 감독은 "불펜 운영에서, 데이터만 들여다봤던 내 잘못"이라고 오히려 사과했다.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운 지난 8월 18일 서울 잠실구장 KIA와 LG 경기를 찾은 팬들이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공에 흔들리지 않았다. 에이스 양현종을 4회 2사 때 교체했다. 팀 승리를 위한 결정이었고 이 감독은 경기 뒤 양현종을 '백허그'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양현종은 "오히려 제가 더 미안했다"고 했다. 막내급 5선발 김도현을 5회 교체했을 때도 이 감독은 다음날 김도현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팀과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으로 손해를 보는 이들에게 사과했다.

물론 마냥 감싸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한 실수에 관대하지만 부주의와 준비 부족에 엄했다. 스타라고 예외는 없었다. 올 시즌 최고 스타 김도영은 지난 7월2일, 홈런을 치고도 이전 이닝 수비 때 보여준 집중력 부족을 이유로 교체됐다. 팀 내 중심 선수 중 하나인 유격수 박찬호 역시 지난 8월16일 뜬공을 때리고 1루까지 천천히 뛰었다는 이유로 바로 교체했다. 일종의 '인사조치'였다. 이 감독은 "팬들도 이렇게 집중하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충성을 얻기 위해 잘못을 눈감아 주고, 개인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정들이 모였다. 고집과 독선이 아닌, 합리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KIA의 우승을 만들었다. 그 리더십을 만든 오랫동안의 꼼꼼한 준비가 이범호 감독의 성공을 만들었다.

모든 우승은 특별하고, 스포츠는 시대를 반영한다. 몇번을 말하지만 야구가 정치보다 낫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범호 감독과,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면 꽤 괜찮은 추석 선물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사과'를 검색창에 넣으면, 그가 사과를 했다는 소식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대통령 사과를 촉구했다는 소식만 넘칩니다.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국민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드러낸 경우를 찾아봤습니다.

취임 후 3개월이 지난 2022년 8월, 폭우로 반지하 거주 일가족이 사망하는 등 비 피해가 잇따랐었죠. 용산에서 퇴근해 서초동 사저에서 전화로 재난 대응을 지시했던 윤 대통령은 "불편을 겪은 국민께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취임 후 첫 사과를 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엔 이태원 참사 발생 후 6일 만에 "국민의 생명과 안심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고요.

지난해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후에는 "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드린 데 정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1일 의정갈등에 관해 "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 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늘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어요. 총선 패배 엿새 만인 4월 16일엔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비공식 회의에서 발언한 것을 대통령실이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는 뜻을 가진 '사과'란 표현을 처음 쓴 것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관련이에요. 지난 5월 9일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말들입니다. 2022년 8월 대통령의 폭우 피해 관련 메시지가 '취임 후 첫 사과'냐는 질문에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굳이 사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어요.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으로 의심했다는 내용이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에 담겼다가 파장이 커진 다음 수정되는 일도 있었고요. 총선 메시지는 '대독' '비공식' 형태로 나왔고,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엔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특검은 반대했어요.

사과에 인색한 대신 "곳곳에서 반개혁 저항이 계속"된다거나 "검은 선동세력" "반대한민국 세력이 존재"한다는 손가락질은 꾸준합니다.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 감독, 미안하다고 수시로 표현한 감독이란 것 외에도 '소통' '탈권위'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여럿 보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미덕이 아닌데도 왜 우린 가질 수 없는 걸까요? 이용균 기자의 말처럼 모든 우승은 특별하고, 승패엔 늘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우승하면 안 될까요?

1.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 감독은 격노 대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감독이다. KIA가 올해 KBO리그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자 이 감독의 리더십이 조명된다.

2.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다. 사과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고, 그마저도 진정성을 자주 의심받는다.

3. 모든 우승은 특별하고, 승패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을 우승하게 할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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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내가 사라져야 한다면>을 읽고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이야기입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을 할 때,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더 많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기획기사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와 <전환기의 노동, 길을 묻다>, 혹은 발전소 비정규직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석탄발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또 다시 원자력발전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2일, 8년 만에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이 재개됐어요. 에너지 이야기는 차차 더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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