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틀에 한명 살해된 여성들 …‘114번의 신고, 114번의 실패’

2025-11-17

“지난해 친밀한 파트너에게 죽임 당한 여성 181명”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여성 114명이 모였다. 이들은 오와 열을 맞춘 뒤 상체를 늘어뜨리고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북소리가 울리자 맨 뒷줄의 여성들이 박자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신고받고도 실패했다. 구속도 실패했다. 처벌도 실패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한 어절을 외칠 때마다 검은 몸들이 차례로 솟아났다. 맨 앞줄까지 모두 일어서자 이들은 주먹을 움켜쥐고 외쳤다. “여성폭력 방치국가 규탄한다!”

이날 한국여성의전화는 세계여성폭력추방 주간을 앞두고 여성살해 현실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114명의 참여자는 지난해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조치를 받았음에도 친밀한 파트너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겪은 여성의 수를 의미한다. ‘114번의 신고 114번의 실패’란 이름으로 진행된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은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분노의 게이지’란 이름의 작업팀을 꾸려 매년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정부가 여성 살해와 관련한 공식 통계를 집계하지 않자 직접 언론 보도를 기반으로 수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발표된 ‘2024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를 보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된 여성은 181명에 달했다. 이틀에 한 명꼴로 여성이 살해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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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에 참여한 한예은씨(30)는 “국가가 여성을 향한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개입하지 않는 현실이 분하다”며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경숙씨(60)는 “여성 폭력이 여전히 만연하지만 스스로 폭력 피해를 겪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 폭력의 현실과 이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촬영한 퍼포먼스를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 시작되는 오는 25일 배포할 예정이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은 1991년 지정돼 11월25일부터 12월10일까지 열린다.

▼ 우혜림 기자 saha@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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