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그룹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비전을 담아 주주들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무려 열여섯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진옥동 회장은 그룹 CEO로서 치열한 고민과 성찰, 조직내 결함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비판을 있는 그대로 주주 앞에 드러냅니다.
진옥동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확한 현실·환경 진단을 토대로 그룹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주주의 이해를 구하고 주주와 동행을 약속합니다. 다른 업권보다도 더 숫자로 말하고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금융회사답게 편지 곳곳에 정확한 수치와 인포그래픽을 넣는 합리적 객관화도 잊지 않았습니다.
인간 진옥동 그룹 CEO로 꿈꾸는 '계속기업'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진옥동 회장의 주주서신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961년생인 인간 진옥동은 1991년 2세출산과 함께 아버지가 됐고 당시 유일한 소망은 그저 아이의 건강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자식 가진 모든 부모가 그렇듯.
신한은 어떻습니까. 진옥동 회장은 "기업의 창업자는 어떠한 마음일까. 1등회사를 기대하기 앞서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래오래 존속하길 바랄 것"이라며 "될 수만 있다면 50년, 100년 지속되는 회사가 되길 바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 더,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신뢰와 사랑받는 회사'를 그는 바랍니다.
2년 전 그룹 CEO로 취임한 진옥동 회장이 <스캔들 Zero, 고객 편의성 제고, 지속가능한 수익창출>이라는 3가지 일류(一流) 어젠다를 강조한 건 이 때문입니다.
진옥동 회장은 주주서신에서 "나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1등이 아닌 고객과 사회가 인정하는 일류를 지향해야만 신한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며 "1등은 외형과 손익 등 숫자로 결정될뿐 이것이 미래의 생존까지 보장하지 않는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재무적으로 뛰어난 회사라도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며 "기업의 지속가능함에 중요한 것은 구성원 모두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본인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위기에 다잡은 내부통제 중요성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해 신한투자증권의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사고는 뼈아팠습니다. 진옥동 회장은 "가장 가슴아픈 기억은 일류 어젠다의 중요한 축인 스캔들 Zero에서 한차례 위기를 겪었던 일"이라며 "일류 지향의 근간이 되는 내부통제에 결함이 드러났다는 것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닙니다. 진옥동 회장은 "그룹과 신한투자증권은 비상대책반을 가동하며 후속대응에 임했고 자체 원인분석과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해 내부통제체계 문제를 파악했다"며 "현재는 도출된 개선방안을 강력하게 실행중이며 위기극복과 정상화를 빠르고 일관성있게 추진해 지속가능한 성장체계를 조기확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도적 밸류업…부동산 쏠림 완화
2024년 재계의 핵심이슈는 기업가치 제고계획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작년 7월말 신한금융은 ▲2027년까지 13% 이상 안정적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기반한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주주환원율 50% ▲3조원 이상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2027년말 4억5000만주까지 주식수 5000만주 감축을 골자로 하는 '10·50·50' 밸류업 계획을 선도적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밸류업은 일견 국내 증시 선진화를 바라는 정부와 주주가치 제고에 방점을 찍는 일부 상장기업의 '콜라보' 정도로 규정할 수 있지만 진옥동 회장은 밸류업을 통한 거시경제의 장기적 선순환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부동산불패,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지는 자금쏠림과 가계부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옥동 회장은 주주서신에서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을 소환합니다.
"지난해 있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 다음날 해외투자자 미팅이 있었다. 투자자들에게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선거 이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질문이 이어졌다. 내 답변은 이랬다. <한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연금 고갈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을 중심으로 전망해야 한다. 출산율이 하락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는데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현재 40% 초반 수준에 불과하다. 노후자금 투자처로 자본시장이 아닌 부동산이 선호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상승 및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자본시장 밸류업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이 패턴은 계속될 것이기에 기업의 직접금융시장을 키워 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모두가 큰 이견이 없는 상태다.> 즉 한국의 밸류업은 앞으로도 흔들림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시장을 연금투자처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진옥동 회장의 지론입니다.
그러면서 진옥동 회장은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밸류업 프로그램 정착과 성공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일각에서는 지난해 한국증시가 기대만큼 선전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희망적으로 본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수익성 확보를 통한 질적성장
진옥동 회장은 올해 '질적성장'을 목표로 경영효율성 제고와 자산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비용효율화 노력을 통한 영업이익경비율(CIR) 관리와 함께 효율적 자본배분을 통한 CET1 비율 및 위험가중자산(RWA) 안정적인 관리 등 수익성 중심의 마진관리를 추진합니다.

또 은행과 증권의 자산관리(WM)사업을 원(One)거버넌스 체계로 운영하면서 차별화된 고객경험을 제공하고 나아가 WM사업을 구조화된 IB 딜(Deal)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PIB(PB+IB) 사업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등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그룹 수익구조를 다변화할 계획입니다.
해외에서는 베트남과 일본에서 축적한 현지화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사업전략을 구축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모델을 더욱 확장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창출해 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디지털전환과 AI 혁신을 더욱 가속화하고 디지털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신사업 혁신을 강화해 미래 금융시장을 선도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가겠다고도 했습니다.
키케로에게서 찾는 금융사의 의무
"신의는 말한 바를 실행함에서 비롯된다."
진옥동 회장은 주주서신에서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쓴 <의무론>을 다시 인용합니다. 처음은 '2025년 신한금융그룹 신년사'에서였습니다. 진옥동 회장은 "'의무를 다하는데에 인생의 모든 훌륭함이, 의무에 소홀한 데에 인생의 모든 추함이 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고 썼습니다.

진옥동 회장은 주주서신에서 올해초 열린 '경영포럼'을 떠올리면서 "그동안의 경영포럼은 그룹 재무목표를 공유하고 한해 전략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올해는 오로지 <의무>에 대해서만 토론을 이어갔다"며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금융인이라면, 모름지기 신한의 구성원이라면 어떤 의무를 가져야 하는가. 고객에게, 주주에게, 협력업체에게 그리고 동료에게 각각 어떠한 의무를 다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논의했다"고 상기했습니다.
이어 진옥동 회장은 "앞으로 그룹 CEO로서 주어진 소임은 <신한다움>을 시대변화에 맞춰 계승 발전시켜가며 이해관계자로부터 두루 인정받는 일류 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2027년까지 ROE 10%, 주주환원율 50%, 주식수 5000만주 축소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2024년의 꿈을 2027년의 현실로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