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 50일을 앞두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지명이 이례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지명 철회로 새 후보를 찾아야 할 교육부 장관, 조직 개편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금융위원장을 제외하면 지명 자체를 하지 않은 건 공정위가 유일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22일 “주요 경제부처 장관 라인업이 모두 갖춰졌는데 공정위는 언급조차 없어 다들 의아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는 새 정부 초기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인 지난 6월 5일 첫 국무회의에서 “공정위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 등을 통해 국내외 플랫폼의 지위 남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만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직 확대로 해석됐다. 이런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면 수장 교체가 불가피하다. 이 대통령이 염두에 둔 후보가 있을 거란 관측에 힘이 실렸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원장 지명이 미뤄지는 배경 중 하나로 정부가 플랫폼 규제에 강하게 나서기 어려워진 상황 변화가 꼽힌다. 미국은 최근 한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온플법 제정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구글·애플 같은 자국 빅테크의 피해를 우려해서다. 정부 입장에선 온플법 추진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관세 협상이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 속도 조절 움직임이 관측된다.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22일 “미국으로 가는 협상팀에 혼선을 줘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 8월 이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정위원장이 다른 장관과 달리 임기(3년)가 정해진 정무직이란 점도 고려 대상이다. 헌법이나 법률로 임기가 보장된 임기제 정무직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 등 법으로 정한 사유가 아닌 한 면직되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 위원장의 임기(9월 15일)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핵심 이슈인 온플법 추진까지 지연된 마당에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공정위원장 지명은 정부 출범 한 달 내에 빠르게 이뤄졌다. 가장 빨랐던 문재인 정부에선 불과 일주일 만에 김상조 전 위원장을 지명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가장 늦은 55일 만에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명했으나 성희롱 논란에 자진 사퇴했다. 만약 이번 주 내로 공정위원장 지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최장 기록을 깨게 된다.
이 대통령이 직접 힘을 실어주며 조직 강화에 탄력을 받을 거로 기대했던 공정위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을 뿐 정확한 가이드라인은 없기 때문에, 조직 개편 등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플랫폼국과 경인 사무소 신설, 조사인력 증원 등 현안이 많은데 사실상 세부적인 논의를 멈췄다”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는 지철호 전 부위원장,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언급된다. 공정위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지 전 부위원장은 내부 신망이 두텁다. 공정위 비상임위원을 지낸 이 교수는 공정위 업무는 물론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주 교수는 ‘분배’를 강조해 온 진보 경제학자로 20대와 21대 대선 때 캠프 외곽에서 이 대통령을 지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