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트리거 60' 〈52〉 민선 지방자치 30년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선거는 1952년 4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치러졌다. 전쟁 탓에 전선에 인접한 일부 지역에선 실시하지 못했다. 당시엔 서울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지방의회 의원은 주민의 직접선거로 뽑았다. 겉으로는 민주주의 제도의 시행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 간선제로는 재선이 불투명했다.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을 위해 2년간 미뤄왔던 지방자치제를 ‘도구’로 꺼내들었다. 민의가 국회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림수였다.

당시 지방선거는 정치 깡패까지 동원되는 등 혼탁하게 치러졌다. 친이승만 세력이 지방의회를 석권했다. 유엔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구성된 관제 지방의회는 민의를 내세워 직선제 개헌 지지와 국회 해산을 요구했다.

비록 정권 연장 의도에서 시작된 지방자치였지만 이런 탄생의 원죄와는 별개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도 안착을 위한 중요한 수단임에는 분명했다. 역사적 측면에서도 명분은 충분했다. 일제의 국권 침탈 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다. 갑오·광무 개혁이 그것이다. 조선이라는 낡은 옷을 벗고 근대국가로 나아가려는 ‘국가 대개혁’의 시도였다. 그 일환으로 지방자치적 요소를 도입해 지방행정의 효율화를 꾀하려고 했다. 실패했지만 이런 정신은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 반영돼 지방자치제 도입을 명문화했다.
이렇게 시작된 지방자치는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지방의회는 해산됐다. 혁명과업 성취와 행정 능률화가 명분이었다. 대신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시장·군수는 관선제로 돌아갔다. 지방자치는 30년 넘는 동면에 들어갔다. 특히 72년 유신헌법은 ‘지방의회는 조국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지방자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87년 6월 민주항쟁 시기였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6·29선언에 지방자치제 실시를 포함했다. 직선제 개헌과 함께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됐다. 이후 90년 3당 합당에 반발한 김대중은 지방자치제 관철을 대여 투쟁의 승부수로 삼고 13일간의 단식 투쟁까지 불사했다. 그럼에도 자치단체장 선거는 연기됐고, 91년 지방의회 의원만 뽑는 반쪽짜리 부활에 그쳤다. 지방자치제의 완전한 시행은 김영삼 정부 시기인 95년 6월 27일이다. 주민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함께 뽑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됐다. 이는 ‘익명성의 행정’에서 4년마다 주민의 표로 심판받는 ‘얼굴 있는 행정’으로의 전환이었다.
불친절 관치가 주민 친화적 행정으로
노무현 정부는 분권의 황금기를 열고자 했다. 하지만 한편에선 ‘지방분권위’(김병준 위원장)와 ‘국가균형발전위’(성경륭 위원장) 간 주도권 다툼도 벌어졌다. 성경륭이 추진한 신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거대 담론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면서 김병준이 추진하려던 실질적인 재정 분권은 후순위로 밀렸다.
이명박 정부는 효율성을 내세웠지만 4대강 사업 등 중앙 주도 사업으로 자치를 위축시켰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지방자치에 대한 실질적인 의지는 보이지 않았고, 지방분권의 시계는 돌아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과 ‘자치경찰제’로 재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대선 당시 ‘연방제 수준의 분권’ 공약은 후퇴했다. 자치경찰제 역시 행안부와 경찰청 관료들의 저항에 인사·예산권 없는 ‘무늬만 자치’로 탄생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내걸었지만 이전 정부 때 만든 ‘부·울·경 특별연합’이 폐기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은 없었다.
이처럼 지방자치 시대는 각 정부 철학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재정 분권 등 여러 측면에서 부족한 면도 많다. 하지만 올해로 30년을 맞는 민선 자치제의 시행은 한국의 정치·행정 시스템을 바꾼 ‘트리거’로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행정실명제를 비롯해 주민투표와 소환 등 주민참여를 확대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또 정보공개청구 활성화, 주민 체감형 행정서비스의 도입 등도 이뤄졌다. 불편하고 불친절했던 관치 중심의 행정은 주민 친화적 서비스로 바뀌었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던 단체장이 주민을 직접 만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은 관선 시절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각 지역은 특색있는 사업을 벌이며 발전을 모색해 나갔다. 지방 정부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남 함평 이석형 군수가 추진한 ‘나비 축제’(사진)다. 만 39세에 군수가 된 이석형은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전라도의 외진 농촌 마을 함평을 ‘나비 고장’으로 변모시켰다. 나비의 친환경적이고 청정한 이미지를 함평과 결합했다. “조선시대에 귀양 온 사람도 없다”고 할 정도로 자랑거리가 없던 함평은 대박이 났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도 뒤따랐다. 처음엔 “미친놈” 소리를 들었던 이석형은 이후 3선 군수가 됐다. 리더의 상상력과 주민 참여가 한 지역의 운명을 바꾼 대표적인 성공 신화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참 대단하다. 나비를 가지고 돈을 벌다니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로다. 이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성과”라고 했다.
‘용인 경전철 사업’ 등 부작용도 적잖아
지자체장의 성과는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당시 22만 명 상인들의 반대를 뚫고 청계천 복원 사업을 성공시키며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지역 발전의 성과가 중앙 정치의 ‘등용문’이 된 대표적 사례다.
그림자도 짙었다. 2000년대 초 ‘용인 경전철’ 사업이 그것이다. 당시 이정문 용인시장은 이용객 하루 16만 명 예측을 믿고 사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실제는 예측치의 6%에 불과했다. 이 실패는 2005년 ‘주민소송제’ 도입의 트리거가 됐다. 2013년 주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올 7월 대법원은 단체장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단체장의 치적 쌓기 욕망에 법적 족쇄를 채운 순간이다. 또 1999년 도입된 예비 타당성 조사가 지방 민간투자사업에까지 확대 적용됐다. 이후 재정영향평가가 추가되는 등 중앙정부의 재정 통제 시스템이 강화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이처럼 지방자치제는 창의성과 자율성 아래 지역 발전을 이뤄내기도 했지만 반대로 제도 운용의 한계를 자주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는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과제는 명확하다. 우선 무늬만 자치를 넘어선 실질적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자치경찰제’는 인사·예산권이 없어 지방행정과 치안이 분리된 ‘잃어버린 연결고리’ 상태다. 진정한 주민 밀착형 치안을 위해선 조직과 예산의 과감한 이양이 필수적이다. 재정 분권도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국세:지방세 7:3’ 공약의 실현 여부가 진정한 지방자치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실질적인 재정 분권 없이 추진되는 ‘초광역 전략’(시·도 행정구역을 넘어 사업을 연계하는 메가시티 구상)은 과거 ‘부·울·경 특별연합’ 폐기 사태처럼 ‘옥상옥’이라는 비판 속에 좌초할 수 있다. 일각에선 행안부·기재부·교육부 등 중앙부처가 일부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는 정도의 분권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는 1982년 ‘지방정부의 의무에 관한 법’을 만들어 외교·국방 관련 권한을 빼고 나머지 권한을 지방정부에 위임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또 2003년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분권 원칙을 명시(헌법 1조)하고, 지자체의 권한·재정 자율성·주민참여를 강화했다.
지방소멸 시대라는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도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단순히 단체장이나 기관의 권한을 늘리는 ‘자치 1.0’ 시대를 넘어야 한다. 실질적인 재정과 자치 권한을 확보한 가운데 지역 주민이 주권자로서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자치 2.0’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새마을운동’ 편입니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거버넌스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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