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이슈에 행정소송도 매년 증가 추세
행정법원 ‘학교폭력 사건’ 열린강좌 개최
일선 판사가 실무 절차 및 주요 쟁점 소개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어른들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 다퉜던 학생들이 오늘은 같이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어른들이 법적 다툼을 시작하고 있는 거죠.”
학교폭력 사건을 다수 처리해 온 한 법관은 최근 ‘교육의 사법화’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이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으로 해소되는 ‘정치의 사법화’처럼, 학생 사이 갈등이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사법화됐다는 것이다. 이 법관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하다”면서도 “학교의 교육적 개입은 설 곳을 잃고 학생들의 사소한 갈등까지 법정으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의 사법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법적 분쟁은 학교폭력과 관련한 행정소송이다. 징계를 받은 가해학생이나 보호조치 대상인 피해학생은 학교폭력과 관련한 조치에 불복하며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있다. 심판 결과에 대해 불복하거나 행정심판을 거치지 않고도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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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접수되는 학교폭력 관련 행정소송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학교폭력 행정사건은 2022년 51건에서 2023년 71건, 2024년 98건으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등 공인의 과거 학교폭력 사례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지난해 3월부터 가해자가 받은 중대한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도록 한 정부 조치, 피해자 측이 권리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게 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0일 학교폭력 관련 행정소송을 주제로 변호사 및 관련 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열린 강좌’를 진행했다. 법원은 법률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을 대상으로 행정 분야 동향과 쟁점을 공유하는 지난해 9월부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4회를 맞은 이번 강좌에서는 행정법원에서 학교폭력 관련 행정사건을 담당해온 손인희(사법연수원 41기)·윤상일(43기) 판사가 발표와 질의사항에 대한 답변 등을 진행했다. 이날 강좌에 앞서 김국현 서울행정법원장은 환영사에서 “학교폭력은 교육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학교폭력 사건이 법원 재판으로 넘어오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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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일 판사는 학교폭력 행정소송과 관련한 실무 절차와 주요 쟁점 등에 대한 발표를 맡았다.
윤 판사는 먼저 학교폭력 행정사건에서 원고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가·피해 학생에서 그 보호자까지 확대됐다는 점을 설명했다. 2023년 학교폭력예방법(17조의3) 개정에 따른 변화인데, 이전에는 학생의 보호자가 학교폭력 관련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이 있었다. 법 개정으로 보호자의 원고적격이 인정돼 피해학생이 사망하거나 직접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호자가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법원이 소송을 심리할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소의 이익’ 문제에 대해서도 다뤄졌다. 일례로 윤 판사는 가해학생에게 내려진 처분이 이미 종료됐더라도, 그 처분으로 인해 생기부에 기재된 불이익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면, 여전히 법적 다툼의 실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해학생이 해당 학교 학생이라는 신분을 상실한 경우(전학, 자퇴, 졸업 등)에도 소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는지는 논란이었다. 기존 학교폭력예방법상의 각종 조치는 해당 학교의 학생 신분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조치의 종류와 신분 변동의 특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학생 신분을 상실했다고 해서 소의 이익이 자동으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폭력 소송에서의 임시조치(가구제)와 관련해 윤 판사는 피해학생의 의견 청취 절차가 신설된 점, 집행정지 신청 시 재판부에 조치의 집행 시점과 이행 기한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자주 논의되는 절차적·실체적 하자 문제도 다뤄졌다. 절차적 문제로는 일부 처분서에 조치의 근거가 불명확하게 기재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 지적됐다. 사안조사 과정에서 편파적인 조사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절차적 위법을 주장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다만 단순한 조사 과정의 문제만으로 처분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윤 판사의 설명이다.
실체적 하자로는 사실인정과 학교폭력 해당성 판단이 주요 쟁점이 된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진술이 엇갈릴 경우, 법원은 진술이 일치하는 부분만을 사실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러한 접근이 객관적 진실과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윤 판사는 지적했다. 또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는 교육장의 재량이지만, 사회 통념상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부당한 경우에는 재량권 일탈 및 남용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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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희 판사는 학교폭력 행정사건과 관련해 변호사 등이 사전에 제출한 질의사항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피해 학생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손 판사는 우선 학교폭력 사건이 일반적인 형사 사건과는 다소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엄격한 증거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가·피해 학생과 목격 학생의 진술을 토대로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형사재판에서 아동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어느 정도 참고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된다”고 했다.
손 판사는 그러면서 한 사건에서 목격자로 지목된 한 아동이 최종 조치가 나올 때까지 수차례에 걸쳐 진술서를 작성한 사례를 소개했다. 이 학생은 교사와 가해 학생 부모 등의 요구에 따라 총 8번의 진술을 했는데, 진술 내용이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고 한다. 손 판사는 “아동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목격 학생의 진술이 비교적 객관적 증거로 평가될 수 있지만, 목격 학생이 소수이거나 폐쇄된 공간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면 해당 진술이 변동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사건 특성상 비실명 자료가 많다는 점에 대한 질의도 이어졌다. 징계 처분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증거를 탄핵하려면 어떤 증거가 제출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교육청 등이 제공하는 사안 조사 보고서 등이 대부분 비실명화 처리돼 가해 학생 측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손 판사는 “교육지원청이 피고로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비실명화 작업을 하더라도 보다 명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제출 자료들은 모두 ‘○○○’으로 처리돼 있어 가·피해 학생, 목격자조차 구분하기 어렵다”며 “가능하다면 ‘A, B, C, D’ 등의 기호로라도 구분하거나, 비공개 원칙을 유지하되 재판부에 한해 실명 문건을 제출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소년보호처분과 행정소송과 관계에 대한 질의에 대해선 “소년보호 사건은 반사회적 행위를 한 소년에게 형사 처벌 대신 보호 처분을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학교폭력 사건은 교육과 선도를 목적으로 한다”고 둘을 구분했다. 손 판사는 “소년법상 불처벌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학교폭력 사건에서도 반드시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불처벌 결정’이 죄가 되지 않는 경우뿐 아니라 기존에 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어 동일한 조치가 반복될 경우에도 내려질 수 있다고도 소개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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