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100년이 다가온다. 100년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어제의 성취와 오늘의 위상과 내일의 소망을 생각해 본다.
먼저 어제를 돌아본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장기 주권국가를 지속하던 나라를 잠시 잃었다 다시 찾았을 때 한국의 상황은 희망으로 넘실댔다. 그러나 이어진 세계이념의 침투와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
국제관계, 교육, 경제, 민주주의 등
광복 후 한국, 세계 표상으로 부상
인구·지방·학교 등은 소멸 위기에
상생·평안의 성숙 국가 전환 화급
완전 폐허에서 생에의 의지만이 남았을 때 한국인들의 생존력과 회복력, 창조력과 질주력은 기적을 방불케 했다. 개인과 공동체가 당한 가공할 고난이 연단(鍊鍛)으로, 연단이 눈뜸으로 연결된 결과였다. 한국 전래의 한(恨)이 갖는 두 본질, 즉 수동적 내려놓기와 능동적 튀어 오르기가 결합된 용쓰기였다.
가장 먼저는 안보 강화와 국제연대였다. 국제질서 격변의 와중에 오랜 문약(文弱)으로 주권상실과 공산 침략을 경험한 한국민들은 안보를 위해 자원의 국가방위 집중, 그리고 최강 제국과의 동맹을 결성하였다. 기본 안전장치가 갖춰지자 발전 욕구와 역동성은 폭풍처럼 몰아쳤다.
교육열은 가장 먼저 불을 뿜었다. 학교와 학생의 증가는 폭발적이었다. 한국교육은 세계에 교육 기적으로 불렸다. 경제도 못지않았다. 공장·수출·건설·산업구조의 변화는 20세기 세계 경제발전의 압축판이었다. 빈곤 탈출을 넘어 발전과 혁신의 선두주자로 치고 나갔다. 안보·교육·경제에 이어 민주주의 발전도 눈부셨다. 특히 전쟁 상대와의 대치상태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안보-경제발전-민주화를 한 세대 만에 성취하도록 촉진하였다.
민주화의 문턱을 넘자마자 대표적 국제기구들은 한국을 ‘제1세계’에 포함했다. 한국전쟁에서 세계 두 진영의 충돌로 인류 최초로 ‘제3세계’라는 용어를 등장하게 했던 나라가 자기를 부정하고 초단기로 제1세계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이제 오늘을 보자. 먼저 오늘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자동차·스마트폰·조선·전자·방산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과 시장점유는 세계적이다. 문화예술도 그러하다. 오늘날 한국의 상품과 문화는 어딜 가나 거의 일상적으로 만난다. 온통 세계를 덮고 있다.
하여 오늘의 한국의 종합국력은 제국과 패권 국가 밑의 위치에까지 올라와 있다. 어떤 기술과 산업은 글로벌 패권 수준에 도달해 있다. 중화체제 이래의 장구한 과거와 비교할 때 한국 문명은 오늘날 지구적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 국력지표를 정밀하게 비교하면 우리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한때 경쟁하던 아시아의 네 마리 용과의 비교는 이제 무색하다. 셋을 합쳐도 한국에 버겁다. 똑같이 출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언급 자체가 불능이다. 한국은 이제 중국·일본·인도와 함께 아시아의 네 호랑이로 불린다.
최고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기본 국력총합도, 전통적 스칸디나비아 3국은 물론 4국 전체로도 한국과 비등하거나 부분적으로 한국에 뒤진다. 가장 놀라운 점이다. 심지어 한국은 한 특정 대륙 전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국력지표가 적지 않다. 나아가, 근대 이후 대표적 선진국들인 영국·프랑스·독일·일본과 각각 비교하더라도 특정 시기를 빼면 오늘날 한국의 세계위상에 앞선 시대는 길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휘황한 성취와 함께 세계 최악 수준의 자살률과 출산율이 세계 최장으로 공진하고 있음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사회갈등, 청년자살, 젠더 격차, 노인빈곤, 비정규직 규모도 세계 선두권이다. 인구소멸·지방소멸·학교소멸을 넘어 공동체소멸·국가소멸에 대한 안팎의 경고가 넘치는 현실이 광복 100년을 앞둔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소멸을 낳은 발전이다. 미래를 보건대 실은 이게 더 무섭다.
끝으로 내일을 말하자. 한마디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대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야 빛나는 성장과 끔찍한 소멸의 동시 질주를 극복할 수 있다. 청년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엄숙한 의무요 소명이다. 성장이 자라남·커짐·번영을 뜻한다면, 성숙은 익음·좋음·온전함을 뜻한다. 성장은 경쟁과 질주로 가능하나 성숙은 상호 인정과 공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곧 한 사회의 성숙은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향한 상생과 조화를 말한다. 정녕 한국은 이제 성숙국가, 성숙사회를 꿈꾸고 이룰 때이다. 고속질주가 놓쳐온 안정·포용·복지·행복을 고루 함께 누릴 때다. 광복 100년까지 남은 기간은 꼭 성숙의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한국은 배우기와 추격하기의 달인인 동시에, 따라잡기와 뒤집기의 명수이고, 나아가 창조하기·앞서가기·모범되기도 두드러진다. 과거의 인쇄술·청자·한글·거북선, 오늘의 반도체·조선·스마트폰·자동차·문화를 보라. 그것들을 넘어 이제 타협과 공존, 상생과 안온의 기예도 앞선 모범이 되어 세계와 공유할 때이다. 그리하여 광복 100년에는 이 부분에서도 “세계에 널리 빛을 퍼뜨리는(lumina pandit)” 나라를 만들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