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충돌에 일본 다시 본다…'미래협력'이 '과거사 해결' 추월 [새정부 외교에 바란다㊦]

2025-06-12

‘트럼프의 미국’에 대한 불안과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에 대한 불신이 일본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발 관세전쟁 등으로 인한 피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하고, 반중 정서는 고착화하는 가운데 여론은 일본과 협력해 돌파구를 찾기를 어느 때보다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외교의 ‘마지막 퍼즐’은 일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12일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손열)의 공동 기획 조사(6월 4~5일, 전국 성인남녀 1509명 웹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 ±2.5%p, EAI가 한국리서치에 의뢰)에 따르면 새 정부가 대일 외교에서 우선 고려해야 할 이슈로 가장 많은 49.6%가 “경제, 기술, 안보, 환경 분야 등에서 미래지향적 협력 추진”을 꼽았다. “역사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꼽은 응답자는 31.5%였다.

20대 대선 직전인 지난 2021년 실시한 여론조사(2021년 8월 26일~9월 11일, 전국 성인남녀 1012명 대면면접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 ±3.1%p)에서는 같은 질문에 역사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응답자가 40.7%로 미래지향적 협력이 우선이라는 응답(35.3%)보다 많았는데, 이번에는 순위가 뒤집힌 것이다.

이념 성향 별로 보면 진보층만 역사 문제 해결을 더 우선에 놨다.(역사 문제 44.9% vs 협력 37.3%) 보수에서는 과반인 59.4%가 협력을 택했고, 중도층도 협력에 방점(역사 문제 30.8% vs 협력 50.6%)을 찍었다.

또 “역사문제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8월 공동 기획조사(전국 성인남녀 1006명 웹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 ±3.1%p) 때 42.1%에서 올해 40.4%로 소폭 줄었다. 반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만들어가면 역사 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라는 응답은 같은 기간 32.4%에서 38.3%로 늘었다.

이는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협 요인 1위가 “미·중 전략 경쟁”(지난해 42.5%→올해 64.9%), 2위가 “보호무역 확산 및 첨단기술 경쟁”(지난해 39.7%→올해 59.8%)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중 간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체감하는 수준이 되자 일본을 파트너 삼아 함께 대응하기를 바라는 셈이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채 “오늘날의 전략적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중대되고 있다”고 했는데, 여론의 문제의식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이 대통령은 “양국이 상호 국익의 관점에서 미래의 도전 과제에 같이 대응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약 10개월 사이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한 응답자가 41.8%였는데, 올해 조사에서는 같은 응답이 63.3%까지 상승했다. 이는 “일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30.6%)의 두 배 이상 되는 수치다. EAI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대일 호감도가 비호감도를 앞서는 ‘골든 크로스’를 달성한 건 처음이다.

신뢰도 역시 지난해 33.1%에서 올해 41.2%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73.2%에서 68.4%로 떨어지고(불신은 18.2%→28.6%),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6.7%에서 69.5%로 늘었는데, 대일 신뢰도만 높아진 것이다.

이런 기류는 국가 정상에 대한 호감도에도 반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호감도는 각기 19.6%, 18.2%였는데, 이시바 총리에 대해선 35.9%가 호감을 표했다. 이는 역대 일본 총리 중 최고 호감도다.

대일 인식 변화는 이밖에도 다양한 수치로 확인된다. 한국에 군사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국가를 묻자 일본을 꼽은 응답자는 30.1%였다. 지난해 37.7%에서 7.6%p 줄었다. “일본과의 경제관계가 특히 중요하다”는 응답은 지난해 48.9%에서 올해 53.6%로 늘었다.

여기엔 양국 간 인적 교류가 갈수록 활발해지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60.8%)가 없다는 응답(39.2%)을 처음 넘어섰는데, 올해도 66.3%가 일본에 가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없다 33.7%) 이 중 최근 5년 간 일본을 방문한 횟수가 2~4회라는 응답은 38.4%, 5회 이상이라는 응답은 9.2%를 차지했다.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된 이유로 가장 많은 48.6%가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을, 뒤이어 31.2%가 “매력적 식문화와 쇼핑”을 꼽은 건 일본 방문 경험이 호감도로 이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새 정부의 외교관계 전망을 묻자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 때보다 나빠질 것”으로 본 응답자는 41.5%로 “좋아질 것”(31.9%)이라는 응답보다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정부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중 한·일 관계가 크게 나빠졌던 점 등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일 정책 수립에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유지혜·정영교·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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