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은 태국 수도이자 최대 도시다. 인구만큼이나 외국인 관광객도 많다. 한해 외국인 방문객 수는 매년 세계 1위를 다투는 수준으로, 2000만명을 웃돈다. 그렇다 보니 관광지와 유흥가도 발달했고 화려한 밤 문화는 방콕 여행의 상징과 같았다. 한밤 야시장과 카오산 로드를 헤매고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던 기존의 방콕 관광 공식은, 그러나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Creative District)’의 등장으로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방콕의 러닝 성지, 룸피니 공원
지난달 28일 방콕에 도착해 실롬·사톤 지역에 머물렀다. 매일 일출 무렵인 오전 6시 10분 숙소를 나섰다. 동틀 무렵에도 이미 동네는 활력이 넘쳐났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과 오토바이, 출근하는 회사원과 등교하는 학생들, 아침 식사를 파는 노점 상인이 어우러진 소란스러운 거리. 그들의 일상을 천천히 헤집으며 방콕의 아침을 달렸다.
목적지는 룸피니 공원. 미국 뉴욕으로 치면 센트럴파크쯤 되는 곳이다. 입구에선 에어로빅이 한창이었고, 공원 둘레길은 러너들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얼핏 보면 악어처럼 생긴, 길이 1.5m가량의 대형 도마뱀이 도처에서 출몰하는데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1.5㎞ 떨어진 인근의 벤짜낏 공원과는 육교로 연결돼 쉽게 오갈 수 있었다. 조깅이 취미라면 꼭 들러야 할 필수 코스다. 한낮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방콕 ‘힙지로’, 전 세계 관광객 붙들다
룸피니 공원에서 서쪽으로 15분만 걸으면 짜오프라야 강 변에 인접한 방락 지역이 나온다. 방콕 최초의 포장도로인 타논 짜런끄룽이 중심으로, 20세기 초 유럽 상인들이 정착하며 호황을 누린 곳이다. 도심이 강변에서 내륙으로 옮겨간 뒤 쇠락했다가 2010년대 후반 들어 되살아났다. 정부와 도시 전문가, 신진 작가들이 힘을 합쳐 도시 재생에 나섰고 방콕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현지에선 이곳과 차이나타운 일부를 합쳐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라고 부른다. 20세기 초부터 형성된 유럽풍 교회와 건물이 건재하고,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허름한 골목도 그대로다. 이곳에 벽화가 덧칠되고 소규모 카페, 갤러리 등이 줄줄이 들어서며 현지인과 관광객을 동시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서울 성수동, 을지로를 연상시킨다.
포르투갈 그래피티 아티스트 빌스의 작품으로 채워진 포르투갈 대사관 담벼락은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벽을 긁고 파내는 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1940년대에 만든 뒤 방치했던 창고 7동은 태국의 유명 건축가 두앙릿 분낫의 손길을 거쳐 ‘웨어하우스 30’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엔 카페와 갤러리,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포함한 복합 문화공간이 들어서 현지 MZ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차이나타운 남쪽의 딸랏 너이 골목도 놓쳐선 안 된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의 담벼락엔 중국풍의 벽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계·자동차 부품을 거래하는 소규모 상점 사이사이에 숨은 빈티지한 카페와 레스토랑을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에 가려면 수상 교통로를 이용하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강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교통 체증과 매연을 피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짜오프라야 강변에 자리 잡은 특급호텔은 자체 셔틀 보트를 이용해 투숙객을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 인근의 ‘사톤 피어’나 강 건너편의 대형 쇼핑몰 ‘아이콘 시암’까지 데려다준다. 이번 여행에서 머문 포시즌스 호텔 방콕도 매시간 무료 셔틀보트를 운영했다.
전시 보고, 무에타이 배우고…이색 호캉스
방콕의 낮이 무덥다면 포시즌스 방콕 안에서도 작은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를 만나볼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스트릭트 내에 자리 잡은 포시즌스 방콕은 ‘아트 스페이스(ART Space)’란 전용 공간에서 방콕현대미술관(MOCA Bangkok)과 공동 전시를 연다. 현지 예술가의 기획전이 연중 진행되며, 전시는 분기별로 바뀐다.
2020년 개장한 포시즌스 호텔 방콕은 호캉스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짜오프라야 강이 보이는 객실에서 방콕의 석양을 바라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투숙객은 무에타이·요가·그림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미리 일정을 확인해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밤이 아쉽다면 2023년 ‘월드 50 베스트 바’에서 아시아 1위를 차지한 포시즌스 방콕의 BKK소셜클럽에서 칵테일 한잔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정보
인천에서 태국 방콕까지는 비행기로 약 6시간 걸린다. 태국은 무비자로 최대 90일까지 머무를 수 있다. 동남아답게 날씨는 더운 편이지만, 올해 한국의 여름보다는 다소 시원하게 느껴졌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여서 방콕 여행의 적기로 꼽힌다. 태국의 대마초 합법화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대마 성분이 든 식음료를 섭취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국인은 태국에서 대마초를 흡입하거나 소지하고 들어오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방콕(태국)=글ㆍ사진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