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코앞 ‘필수과목 민족학’ 좌초 위기

2025-05-15

졸업 요건에 민족학 이수 포함 2021년 통과

뉴섬 주지사, 예산 배정하지 않아 시행 연기

가주 전역 1600여개 고교서 학사 일정 혼란

교육구에 따라 일부 수업 중단하거나 유지

가주는 2021년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 졸업 요건에 민족학(Ethnic Studies) 과목을 포함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행을 불과 몇 달 앞둔 현재, 개빈 뉴섬 주지사가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서 정책 시행이 지연되고 있다. 동시에 정치적·사회적 논란이 격화되며 제도 자체의 존립 여부마저 불투명해지는 상황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는 가을 입학하는 9학년 학생들부터 고등학교 재학 중 최소 한 학기 동안 민족학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법에 따라 주정부가 관련 예산을 제공하지 않으면 필수 과목 요건은 발효되지 않는다. 즉, 뉴섬 주지사의 예산 보류는 사실상 시행 연기를 의미한다.

가주 재무부 대변인 H.D. 팔머는 “이번 예산안에는 졸업 요건을 발동시키는 민족학 과목 지원금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지속 가능한 재원이 부족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밝혔다. 앞서 주정부는 민족학 과목 도입을 위해 초기 자금으로 5000만 달러를 배정했으나, 이후 필요하다고 평가된 약 2억76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예산은 확보되지 않았다.

현재 가주 전역 1600개 이상의 고등학교가 학사 일정을 마무리하며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일부 학군은 자체 예산으로 수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LA 통합교육구(LAUSD), 샌타모니카, 알함브라 등은 이미 자체적으로 졸업 요건에 민족학을 포함시키고 있어 별다른 영향 없이 운영된다. 반면 치노밸리 교육구 등은 “법적 강제 없이는 시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린우드 교육구는 “민족학 과목은 모든 학생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예산이 없다면 해당 과목을 폐지하고 기존 과목 내 일부 단원으로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불붙은 정치적 논쟁

민족학 필수화 정책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추진되기 시작했다. 당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 급증 속에서, 소외된 인종 및 민족의 역사와 관점을 교육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았다.

지지자들은 민족학 수업이 학생 간 이해를 증진시키고, 갈등을 줄이며, 사회정의 의식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 성향 종교·정치 단체들은 “민족학 교육은 좌파 이념의 교육 현장 침투”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교육을 비판하며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관련 프로그램 폐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가주에서 승인한 민족학 모델 커리큘럼은 성소수자(LGBTQ+) 관련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사회 정의와 평등한 민주사회를 위한 현대 사회운동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 속에, 일부 주의원들은 민족학 수업 내용에 기준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유대인 학생에 대한 차별 문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서술 방식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으나, 지난 주말 철회되었다. 대신, 14일 청문회를 열어 종교 및 국적 관련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을 검토했다.

법안 공동 발의자인 민주당 도운 애디스 의원은 “유대인 학생들이 차별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불안해하고 있다”며 “학교가 본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선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보류 이후의 혼란과 비판

개빈 뉴섬 주지사는 2021년 법안에 서명하면서 4년간 과목 개발 및 준비 기간을 설정했다. 주교육위원회는 약 700페이지 분량의 모델 커리큘럼을 승인했고, 각 교육구는 이를 참고해 자체 수업을 설계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커리큘럼은 초기에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을 미국 내 소수민족 투쟁과 동일 선상에 두며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뉴섬 주지사는 최초 법안을 거부했고, 대폭 수정된 커리큘럼이 재승인되었다. 이후 자본주의 비판과 학술 용어 난해성도 완화됐으며, 유대인, 시크교도, 아르메니아인 등도 학습 주제에 포함됐다.

현재 모델 커리큘럼은 참고용일 뿐, 강제 사항은 아니다. 교육구는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내용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르메니아계가 밀집한 글렌데일 교육구에서는 아르메니아 이민자 경험을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다양한 교육 자료들이 등장했다. 보수 성향의 인디펜던트 인스티튜트는 정치 논란을 피한 중립적 커리큘럼을 무료 배포하고 있다. 반면 ‘리버레이티드(Liberated) 민족학’이라는 이름의 자료는 급진적 내용을 담고 있어 유대계 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자료를 만든 일부 학자들은 주 모델 커리큘럼 초안 작성에도 참여했으나, 논란 이후 주정부와의 협력에서 제외되었다. 이들은 독자적 자료를 개발해 무료 배포하고 있으며, 그 중 약 70%는 주 커리큘럼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의 목소리와 대응

린우드 지역 파이어보 고등학교에서 민족학을 가르치는 앰버 팔마 교사는 “이 수업은 학생의 정체성과 이 사회에서의 위치를 탐구하는 수업”이라며 “현재 사회 정치적 맥락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대인 공공정책위원회 캘리포니아 지부의 데이비드 보카슬리 사무총장은 “민족학 수업은 제대로 시행된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수업이지만, 일부 교육구에서는 반유대적 내용이 포함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캠벨 교육구 소속 교사 2명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관련 편향적 수업을 진행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주 교육부는 해당 내용이 주법 위반이라고 결론 내렸다.

팔로알토 교육구에서는 아시아계 학부모 일부가 “민족학 수업이 권력과 특권 개념을 왜곡해 이민자들의 성취를 폄하한다”고 비판하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해당 교육구는 지난 1월 민족학 졸업 요건을 3:2 표결로 통과시켰다.

샌타애나 통합교육구는 유대계 단체와의 소송 합의로 일부 수업을 중단했으나, 여전히 다양한 민족학 수업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정부 예산 여부와 관계없이 정책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치노밸리 교육구의 손자 쇼 교육위원장은 “지금은 이념적 강요가 아닌 기초 학습 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민족학 과목은 학생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LA통합교육구는 아프리카계 문학, 아메리카 원주민학, 민족 시각의 미술 탐구 등 11개의 선택과목으로 민족학 졸업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글=하워드 블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