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을 일으킨 파시스트 추축국 가운데 나치 독일은 1945년 5월8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미국, 영국 등 연합국들은 이날을 ‘유럽에서의 승리’(Victory in Europe)라는 뜻이 담긴 ‘V-E 데이(Day)’라고 부르며 기념한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945년 8월15일에는 제국주의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 우리에겐 광복절인 이날은 ‘일본을 상대로 한 승리’(Victory over Japan)라는 의미에서 ‘V-J 데이’로 불린다. 다만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에선 일본 정부 대표가 미 해군 군함에 승선해 항복 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한 1945년 9월2일이 ‘V-J 데이’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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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며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1월27일 소련(현 러시아) 군대가 오늘날 폴란드 영토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해방시켰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가두고 노역을 시키다가 결국에는 가스실로 보내 살해한 끔찍한 장소였다.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는 총 6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그중 100만명가량이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아우슈비츠 해방 80주년을 맞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독일인들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계속해서 모든 세대에게 전달돼야 한다”며 “우리의 책임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독일 정치인들의 반성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진보 성향 사회민주당(SPD)에 속한 숄츠와 달리 보수 색채가 짙은 기독민주당(CDU)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인 2015년 5월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 되었다. 메르켈은 기념식 연설에서 “많은 이들이 나치와 생각, 신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혀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며 “우리는 희생자들을 위해,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독일이 2차대전 전범국의 오명을 딛고 오늘날 서방 세계의 지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저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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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올해 2차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았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이를 기념해 담화를 발표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작 이시바가 속한 집권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는 부정적 기류가 뚜렷하다고 한다. 종전 70주년인 2015년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담화를 했는데 뭘 또 하느냐는 취지에서다. 그때 아베가 “다음 세대에 사죄를 계속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을 그대로 따르려는 듯해 씁쓸하다. 이시바는 아베에 비하면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사과에 한층 더 열려 있는 지도자로 통한다. 이시바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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