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는 하늘만 난다? 수익은 땅에서도 난다

2025-12-01

스마트팜, 레스토랑, 유니폼 굿즈…항공사의 변신

◆비행기 못 날 때를 대비한다=코로나19로 항공사 매출은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국제 여객 수는 2019년 9039만 명에서 2020년 1424만 명, 2021년에는 321만 명까지 곤두박질쳤다. 항공운송행동그룹(ATAG)에 따르면 2018년 8770만 명이던 항공업계 종사자는 2021년 상반기 417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항공 산업이 창출한 경제 효과도 3조5000억 달러에서 1조7000억 달러로 반 토막 났다. 좌석 판매에 의존해온 항공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항공사들은 지상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가장 빠르게 대응한 분야는 ‘기내식’이다.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는 장거리 노선 기내식을 HMR(가정간편식)로 개발해 핀란드 전역 K-마트에서 판매하는 ‘핀에어 키친’을 출시했다. 한국의 진에어는 기내식 3종 밀키트를 택배로 배송했고, 타이항공은 본사 사무실을 개조해 기내식 레스토랑을 열었다. 실제 항공기 좌석과 내부 조명을 그대로 구현해 ‘비행 감성’을 극대화했다.

항공 브랜드를 소비재로 확장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영국의 버진 애틀랜틱은 202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손잡고 재활용 섬유로 제작한 유니폼을 굿즈로 한정 출시했다. 버진 측은 “유니폼은 브랜드 세계관을 보여주는 핵심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엔데믹 이후 핀에어·진에어의 기내식 밀키트 사업은 중단됐지만, 항공사들의 신사업 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델타항공은 애틀랜타 기반 의류 브랜드와 협업해 프리미엄 ‘원마일 웨어’(집·공항·기내 등 근거리 외출복)를 출시했다.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리테일 숍 ‘델타 숍’을 리뉴얼하고 휴양지룩·골프웨어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일부 항공사는 아예 식음료 자회사나 밀키트 전문 브랜드를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에어아시아는 지난 7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기내식 레스토랑을 열었고, 에어프랑스는 올해 8월까지 두 달간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루프톱에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으로 레스토랑 팝업을 열었다. ‘항공사=운송업’이라는 공식을 벗어나, 지상 수익을 다각화하는 전략이 본격화된 셈이다.

◆지상 사업의 시작은 ‘마일리지’=항공사의 지상 사업, 그 출발점은 ‘마일리지’다. 1981년 아메리칸항공이 처음 도입한 ‘AAdvantage’ 프로그램은 항공 역사상 최초의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로, 단골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일리지는 점차 항공사의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자산으로 진화했다. 카드사, 호텔, 렌터카 회사 등 제휴 업체들이 항공사로부터 마일리지를 ‘구매’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시장이 커진 것이다. 대표 사례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아메리칸항공이다. 전 세계 하늘길이 닫히고 유동성 위기가 덮친 가운데, 아메리칸항공은 자사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담보로 당시 공시 기준 10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담보로 AAdvantage 프로그램 제휴·판매 계약과 마일리지 판매수익 권리, AAdvantage 운영 데이터 및 IP(지식재산권) 등 사실상 마일리지 프로그램 관련 자산 전체로 설정했다. 항공권 한 장 팔지 않고 회사를 살려낸 셈이다.

다만 마일리지는 회계상 부채다. 소비자가 보유한 마일리지가 항공권으로 바뀌는 순간, 항공사는 실제 운항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미래 의무 지출로 분류된다. 현금을 빠르게 벌어들이는 수단인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항공사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 아닐 수 없다.

◆ESG도 챙기고, 비용·리스크도 줄이고=항공사들이 지상 사업에 나선 또 다른 배경에는 환경 규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트렌드가 있다. 탄소배출이 불가피한 항공사들은 ‘하늘 위 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지상의 친환경 사업을 고민해 왔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스마트팜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외에서 냉장 상태로 항공 운송하던 잎채소를 두바이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면서 이동 거리가 줄어들었고, 품질·위생 기준을 항공사가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전통 농업 대비 물 사용량을 95% 줄인 수직농장 방식 덕분에 물이 부족한 중동에서도 작농이 가능해졌다. 탄소·공급망·평판 리스크를 동시에 낮추고 조달비 변동성을 줄인 인프라 투자라는 점에서, ESG가 ‘비용 통제’와 ‘위험 관리’로 연결된 사례다.

이휘영 인하공전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이제 여객·화물 운송 수입 같은 본원적 상품만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 항공사들은 끊임없이 부가 수익 방안을 찾고, 브랜드 파워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국내 항공사도 독자적 상품 개발로 외부 수요를 끌어오지 않는다면, 수익성 저하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사,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되다= “코로나 기간 우리는 그저 버틴 게 아니라, 항공 운임에만 의존하지는 않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했다.” 2022년 에어아시아의 최고경영자 토니 페르난데스가 밝힌 선언이다. 항공사 핵심 자산인 ‘고객 이동 데이터’를 활용해, 항공권 판매는 비즈니스의 일부로 남기고 여행·생활 플랫폼을 중심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업그레이드된 ‘Air Asia MOVE(에어아시아 무브)’ 앱이다. 항공 스케줄 기반 숙소 추천, 목적지 맞춤 쇼핑·식사 할인 쿠폰, 보험, 공항 이동 차량 연결 등 기존 온라인여행사·금융·이커머스 기능을 통합한 플랫폼이다.

효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 3분기 에어아시아 무브의 호텔 예약은 전년 대비 35%, 앱 내 포인트 거래는 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에어아시아 항공편 예약은 20% 줄었다. 비행기는 덜 찼는데 플랫폼 매출은 오히려 증가한 셈. 닛케이아시아의 플랫폼 분석 서비스 ‘비즈럽터스(Bizruptors)’는 에어아시아 사례를 두고 “항공 서비스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여행 플랫폼으로의 확장에 본격 착수했다”고 평가했다.

항공 컨설팅 회사 아이디어웍스컴퍼니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항공사들의 항공 운임을 포함한 승객 1인당 매출은 전년(2023년)보다 3.8% 감소했지만, 1인당 부가매출은 2.5% 증가했다. 맥킨지의 ‘2025년 항공산업 현황’ 보고서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2010년 항공사 전체 매출의 5%에 불과했던 부가매출 비중은 지난해 15%로 크게 늘었다. 여기에는 유료 좌석뿐 아니라 여행상품, 수수료, 카드사 제휴, 리테일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항공사 지상 사업은 이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기내식·유니폼·항공사 콘텐트의 D2C(Direct to Consumer) 판매는 물론, 마일리지 프로그램과 쇼핑몰·서비스를 연동한 로열티 생태계도 커지고 있다. 하늘길을 잇던 항공사는 이제 고객 생활 플랫폼이라는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지상의 항로를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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