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결승전에서 결국 노장이 웃었다. 노바크 조코비치(38·세계 7위·세르비아)가 카를로스 알카라스(22·3위·스페인)를 꺾고 2025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4강에 진출한 21일, 두 선수만큼 주목을 받은 건 은퇴한 테니스 스타 앤디 머리(38·영국)였다.
조코비치는 이날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8강전에서 3시간 37분간의 접전 끝에 알카라스에 세트스코어 3-1(4-6, 6-4, 6-3, 6-4)로 역전승했다. 현지시간으로 21일 밤늦게 시작해 이튿날(22일) 새벽 1시쯤 끝난 대혈투였다. 호주오픈에서만 10차례 정상에 오른 조코비치는 메이저 대회 최다승(25회)에도 한 발 더 다가섰다. 이번 대회에서 조코비치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 최고령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자(37세 249일)로도 이름을 남긴다.
1세트 도중 왼쪽 다리 근육 통증을 호소한 조코비치는 의료진의 치료를 받았고, 결국 알카라스에게 첫 세트를 내줬다. 그렇게 무너질 것 같았던 조코비치는 세 세트를 내리 따내며 역전승했다. 승리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지난해 11월부터 조코비치의 개인 코치를 맡았던 머리다. 메이저 3승과 올림픽 2연패(2012 런던, 2016 리우)의 머리는 2024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알카라스를 꺾은 뒤 가장 먼저 코치 박스로 달려가 머리를 얼싸안았던 조코비치는 “오늘 승리는 머리 코치와 나의 합작품이다. 코치직을 맡아준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조코비치와 동갑(1987년생)인 머리는 지난 20년간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44·스위스), 라파엘 나달(39·스페인)과 ‘빅4’로 꼽혔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36차례 맞대결(조코비치 25승 11패)했다. 특히 머리는 호주오픈 결승전에 5번 올라 모두 준우승했다. 그중 4번은 조코비치에게 졌다. 눈빛만 봐도 서로를 꿰뚫어 읽는 사이다. 이날 통증과 실수로 조코비치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때마다 머리는 단호한 표정과 제스처로 진정시켰다. 덕분에 조코비치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승부를 뒤집었다.
조코비치는 힘과 스피드가 좋은 알카라스를 상대로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알카라스가 승부를 서두르면 조코비치는 랠리를 끌어가는 식으로 실책을 유발했다. 머리의 전략이었다. 조코비치는 24일 세계 2위 알렉산더 츠베레프(28·독일)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