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 크는 동안 아팠던 시간이 많아 여행은 꿈도 못 꿨었는데, 올해는 어디든 가보려고요. ”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남편이 기증한 신장을 이식 받고 건강을 되찾은 이보영(50) 씨는 "결혼 28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준비한다"며 수줍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5월 21일은 둘(2)이 결혼해서 하나(1)의 부부로 성장하게 된다는 뜻에서 제정된 '부부의 날'이다. 서울성모병원은 부부의 날을 맞아 가족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사연을 공개했다.
이 씨는 20년 전 갑자기 피곤하고 머리가 아파 동네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콩팥병 진단을 받았다. 치료로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했지만 말기신부전으로 진행됐고 2019년부터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씨 가족에 또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2021년 남편이 선뜻 자신의 한 쪽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나서면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건강검진을 받던 중 생각지도 않게 위암이 발견된 것이다.
이 씨는 그 해 8월 위암 수술을 받았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암 수술 후 회복되길 기다려야 했다. 건강해 질 것이란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에 빠진 이씨는 친구는 물론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지냈다. 주치의인 정병하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 씨에게 "위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다. 치료를 잘 받으며 기다려보자"며 진료 때 마다 용기를 줬다고 한다.
위암 수술 후 2년이 지나 신장이식 수술을 다시 준비하려던 중 이번에는 대장에서 용종이 발견됐다. 조직검사 후 결과를 다시 기다리는 시간은 이 씨에겐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이 씨는 "지방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함께 고생하는 남편에게도 미안함이 쌓이는 하루하루가 계속됐다"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다행히 대장용종은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씨는 혈액 투석과 혈액 내 항체를 제거하기 위한 혈장분리교환술을 번갈아 받으며 이식수술을 준비한 끝에 작년 1월 남편의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전일(20일) 정기 외래를 찾은 이 씨는 치료 경과도 좋고 건강관리도 잘되고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수술 후 매일 2시간씩 걷고 근력운동을 병행하며 체력을 키운 덕분이다. 이 씨는 "혈액투석 전 등산을 했었던 집 근처 전북 모악산을 바라보며 수술 후 꼭 다시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며 "최근에는 등산로를 다녀올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고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남편은 본인이 (신장을)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지만 아무리 부부 사이라 해도 신장 기증은 당연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며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준 남편에게 28년 결혼생활 동안 못했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았는데, 어려서부터 엄마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냈던 두 딸에게도 고맙다고 한다. 큰 딸 김혜진 씨는 2020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진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 씨는 "혈액투석을 시작해 몸이 많이 아팠을 때라 다른 엄마들처럼 옆에서 도와주지 못해 못한 데 대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건강 때문에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는 이씨의 올해 소망은 가족 네 명 모두 시간을 맞춰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 씨는 “투석 받고 힘들 때는 건강하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건강을 되찾고 나서 가지 못했던 산에도 올라가보고, 먹고 싶었던 음식도 먹어 볼 수 있어서 건강이 곧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환자들도 힘든 투병생활을 잘 이겨내고 자신처럼 곧 건강하고 자유로운 시간이 오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주치의 신장내과 정병하 교수님, 수술해 주신 외과 윤상섭 교수님, 장기이식센터 간호사 선생님 등 치료해 주신 서울성모병원 모든 의료진들께 이 기회를 통해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수술 전 간절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늘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