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전기차와 충전기가 함께 하는 '액션 스쿨'

2025-10-30

전기차는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에너지를 전동기로 전달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이동 수단으로서 전기에너지를 배터리에 다시 저장하기 위한 '충전'이 필수적이다. 주된 충전용 에너지원은 가정 및 건물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계통이다. 전기차는 충전기를 거쳐 전력계통과 연결됨으로써 에너지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며, 신재생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진 전기를 충전할 때 비로소 최적 또는 최소의 탄소 배출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이런 이유로 충전기술은 전기차에서 중심 기술 중 하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첫째, 대부분의 충전이 서로 다른 제조사의 전기차와 충전기 간 이뤄진다는 것과 둘째, 매우 큰 수준의 전기에너지가 전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충전기술은 편의성과 더불어 안전성 확보에도 주된 목적을 둬야 한다. 마치 영화 속 최상위 난이도 액션 장면 촬영을 위해 배우들이 매우 정교한 합을 맞추는 것과 같이 전기차와 충전기 제조사가 서로 다르더라도 충전기술에 대한 명확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합을 맞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합이 정교하지 않은 어설픈 액션으로 흥행에 실패하거나 합을 맞추지 못해 출연 배우나 스턴트맨이 다칠 수 있다. 이처럼 충전 중 전기차와 충전기 간 합이 정교하지 못해 사용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충전 서비스가 제공되거나 전기차와 충전기 부품 손상 등 안전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사용자가 전기차를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자명한 일이다.

전기차와 충전기가 충전의 합을 맞추는 일련의 기술 사항을 일반적으로 '상호운용성'이라 정의한다. 상호운용성 확보는 다양한 세부 기술이 필요하며, 그중 가장 먼저 제시돼야 할 것은 명확한 국제표준이다.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에는 현대차·기아, KGM 등 국내 제조사와 더불어 다양한 해외 제조사의 전기차가 판매되고 있으므로 폐쇄된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의 일부로 판단해야 하고, 모든 기술 기준은 다국적 제조사가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국제표준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기술표준원을 통해 전기차 충전 기준으로 권장한 '타입1' 혹은 ISO와 IEC 등에서 국제 표준에 근거해 제정한 'CCS(Combined Charging System)1'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전기차와 충전기가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술적 바탕이 된다.

하지만 국제 표준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빈틈은 없는지, 각 제조사가 국제표준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해하고 구현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없다면 충전 현장에서 다양한 이슈가 발생할 위협은 항상 존재하고, 동시에 해결방안 도출에 대한 제조사의 개별적인 노력도 항상 필요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전기차와 충전기 개발, 사업화, 사용 중 발생하는 각종 위협을 해소하고,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상호운용성 확보 방법으로는 '상호운용성 평가'와 '적합성 평가'가 제시된다. 상호운용성 평가는 서로 다른 제조사의 전기차와 충전기를 정해진 장소에 가져와 차례대로 표준에 따라 충전 기능을 상호 시험하는 것이며, 적합성 평가는 표준 요구사항에 대한 평가 역량이 검증된 평가장치(Norm)를 이용하여 전기차나 충전기에 각각 적합성 시험을 시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상호운용성 평가 사례는 글로벌 충전기술 협의체인 '차린(CharIN)'이 2020년부터 매년 1~2회 대륙별로 개최하고 있는 행사인 '테스티벌(Testival:Test + Festival)'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2022년과 2024년에 차린 테스티벌을 안산분원에서 개최한 바 있다. 참가한 30여개 제조사를 포함해 300여명의 글로벌 이해관계자들이 상호운용성 평가와 더불어 기술적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2024년 차린 테스티벌에서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선도적인 캘리포니아 주 정부 당국자인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원회(CEC)'의 모빌리티 담당 커미셔너(commissioner)가 참석해 캘리포니아 충전기 보급 정책을 소개하고, 한국 제조사에 보다 많은 시장 진출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기술 세미나를 진행했다. 테스티벌 국내 개최의 의미는 컸다. 그동안 인력과 경비 부담으로 해외 테스티벌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다수의 국내 기업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합성 평가는 검증된 평가장치를 활용해 제삼자 시험기관 혹은 제조사 자체에서 수행할 수 있으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가장 현실적인 상호운용성 확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적합성 평가의 두 가지 핵심 사항은 '평가장치 검증'과 '평가 주체의 표준 이해도'다. 다시 말해서 표준 이해도가 충분한 평가 주체(제3자 평가기관 또는 제조사)가 검증한 장치를 이용해 적합성 평가를 수행한다면 제조사나 출시모델 등과 무관하게 같은 수준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린의 포커스 그룹(Focus Group) 적합성·상호운용성 분과에서는 이러한 핵심 사항 실현을 위한 평가장치 검증 및 평가기관 지정과 관련한 글로벌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있으며, 한국전기연구원은 2018년부터 해당 분과 중 프로세스 개발을 담당하는 'Qualification' 팀의 리더를 맡아 다양한 기술 기여를 하고 있다.

그 결과, 2021년에는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의 데크라(DEKRA)와 함께 차린이 지정한 '전기차 글로벌 상호운용 적합성 평가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올해 말까지 전기차 내 인증서를 활용한 자동충전 기술인 'PnC(Plug-and-Charge)'와 스마트 충전 기술이 포함된 ISO 15118-2 기반의 검증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관련 시험기관으로의 추가 지정까지 받을 계획이다.

메가와트(MW) 충전, 전기차 배터리의 전기를 판매할 수 있는 'V2G(Vehicle-to-Grid)' 기술 등 다양한 전기차 충전기술이 개발됨과 동시에 더욱 많은 전기차와 충전기 모델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상호운용성 평가와 적합성 평가라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교차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면 이제는 두 가지 주요 기술적 접근 방법을 동시에 적용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이와 같은 기술 흐름에 발맞춰 한국전기연구원은 '글로벌 상호운용성 시험센터(GiOTEC:Global interOperability Testing Center)'를 최근 공식 오픈했다. 해당 센터는 전기차와 충전기를 상시 배치해 상호운용성 평가를 진행하고, 시험 결과에 따른 개선 방안 협의 및 전문가 기술 자문을 제공하는 인프라다. 지오텍의 구축 및 운영 주체인 한국전기연구원은 향후 배치될 전기차와 충전기가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상호운용성 기준점이 되도록 하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7월 지오텍을 동반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대차·기아를 시작으로 KGM,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BMW 코리아, SK시그넷, EVSIS, 채비, GS차지비, 현대엔지니어링, LG 볼트업, 서울에너지공사 등 뜻을 함께하는 기업·기관들과 상호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해왔다. 지오텍은 1년 이상의 준비 기간 동안 1MW 이상의 전력 공급, 10대 이상의 전기차와 충전기 배치가 가능한 공간 확보, 적합성 평가 기준 수립, 참여사가 만든 전기차·충전기 적합성 평가 등을 수행해 왔다.

이와 같은 기술적 흐름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충전 인프라 보급 주체인 CEC는 올해 4월 글로벌 상호운용성 시험센터와 같은 콘셉트의 '차지 야드(Charge Yard)' 프로젝트를 공모했다. 미국 새크라멘토에 위치한 Cal EPIC과 한국전기연구원, 차린 컨소시엄이 차지 야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전기연구원은 해당 컨소시엄 내 적합성 및 상호운용성 평가기술의 제공 주체로서 지오텍과 차지 야드의 운영 방식을 통일해 국내 제조사의 북미 진출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정부 출연연구기관으로서 국내 전력기기 제조사의 수출 지원과 기술 경쟁력 향상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왔다. 특히 전기차 충전 분야에 대해서는 시장 확대와 기술 발전에 대응해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글로벌 센터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만들어진 전기차와 충전기가 정교한 합을 맞춰 블록버스터급 액션 무비를 만들어내고,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누구라도 찾아와 도움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액션 스쿨'을 만들고자 한다.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KERI) 원장 nkkim@keri.re.kr

〈필자〉 전기차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이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연구에 매진해 온 김 원장은 2023년 1월 한국전기연구원장에 임명돼 '전기화 세상'을 실현하고자 노력 중이다. 1984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1990년 KERI에 입사했다. 전력반도체연구센터장, HVDC연구본부장, 연구부원장과 원장 직무대행을 차례로 역임하며 전기연구원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대외적으로는 SiC 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부회장, 한국세라믹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훈장 도약장(2018년),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자랑스러운 전기전자재료인상(2022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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