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벤치의 전술 테스트
세밀한 일본 상대 ‘짜릿 성공’
2026 WBC 대표팀 색깔 예고
3월 본대회 겨냥 다양화 준비


8회초, 5-6으로 뒤진 가운데 1사 1·2루로 몰렸다. 한국대표팀 투수 배찬승의 폭투까지 나오며 1사 2·3루가 됐다. 경기 종반이었다. 짧은 적시타라도 하나 맞으면 2실점으로 승부를 놔 버려야 하는 흐름이었다.
타석에는 일본 대표팀 톱타자 무라바야시 이즈키. 위기의 투수 배찬승은 연달아 헛스윙을 끌어내며 삼진을 기대할 만한 볼카운트 0-2를 만들었다. 벤치가 움직였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은 이 대목에서 우익수 안현민 위치를 앞쪽으로 과감하게 당겼다.
그리고 배찬승의 3구째. 빠른 패스트볼에 반응한 무라바야시의 타구는 거짓말처럼 우익수 쪽으로 향했다. 또 낮고 빠른 타구가 우전안타를 직감하게 하는 순간, 안현민이 달려 나와 미끄러지며 타구를 걷어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 야구대표팀 2차 평가전은 공방전 끝에 7-7로 비겼다. 바깥쪽 스트라이크에 너무 인색했던 주심 성향에 두 팀 모두 고전하며 양팀 합쳐 사사구 21개가 나온 가운데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9회말 2사 후 터진 김주원의 동점 솔로홈런이었다.
김주원을 비롯해 문현빈, 안현민 등 젊은 타자들과 함께 신민재, 송성문 등 대표팀의 새 야수들이 희망으로 떠오른 평가전에서 또 하나 확인한 장면은 평가전부터 디테일에 신경을 쓴 ‘류지현호’의 색깔이었다. 지난 17일 귀국한 류지현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8회 수비 시프트에 대해 물었다. 류 감독은 “이번 평가전 일본 1번타자는 히팅포인트를 뒤에 두고 타격을 했다. 더구나 볼카운트가 투스트라이크로 타자가 몰리면서 변화구를 의식해 히팅포인트 더 뒤에 두고 짧은 스윙을 할 것으로 보고 외야수 위치를 바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국 대표팀 시선에서 홈런보다 통쾌한 장면은 3회 송성문의 적시타로 2점을 선취한 뒤 ‘더블스틸’로 일본 배터리와 내야진을 흔들었을 때다. 1사 1·3루에서 대표팀 4번 한동희 타석. 볼카운트 3-2에서 1루주자 송성문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한동희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일본 포수 나카무라가 2루 송구를 했는데 그 사이, 3루주자 안현민이 스타트를 끊어 홈을 쓸었다. 일본 대표팀 2루수 고조노 가이토가 홈으로 달리는 안현민을 시야에 두고 앞으로 달려 나와 포수 송구를 끊었지만 3루주자와 2루주자 모두 놓쳤다.
이 또한 준비한 전술이었다.
류지현 감독은 “1사 1·3루였고, 풀카운트였다. 인플레이타구가 나올 경우에는 1루주자 스타트로 기본적으로 병살을 방지할 수 있는데 타자가 삼진을 당할 경우에는 3루주자가 어떻게 움직이자는 약속이 있었다”며 “그런 상황의 경기 초반에는 포수가 2루 송구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또한 계산에 뒀다”고 전했다.
WBC처럼 특급 메이저리거들까지 나오는 대표팀간 경기에선 ‘팀 전술’을 구사하기 쉽지 않다.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한 경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개인의 몸값, 경력 등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류지현호’는 리그의 단일팀 같은 ‘준비’를 통해 전력에 플러스알파 요인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 1월9일 약 30명이 합류하는 대표팀 사이판 캠프를 2주간 진행하는 것도 그래서 ‘류지현호’의 색깔을 만드는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비와 작전, 주루 등이 전공인 류지현 감독을 비롯해 전 NC 감독으로 수비 전문가 이동욱 코치 등 이번 대표팀에는 야수진의 디테일을 만들어낼 코칭스태프도 최상으로 구성돼 있다. 류지현 감독은 “내년 3월 대회에 만나는 팀마다 여러 상황이 나올 것이다. 그에 맞는 준비를 다각도 해놔 우리 대표팀의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