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트너’ 존 바버 부사장 인터뷰
AI 투자의 해 → AI 실행의 해
한국, 에너지·반도체 등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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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의 등장은 인공지능(AI) 시장의 성숙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형태다.”
정보기술(IT) 분야 시장조사·컨설팅 업체 가트너의 존 바버 부사장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가트너코리아 사무실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기술 시장에서는 기존 기업들이 주도하던 흐름을 ‘파괴적 혁신’을 통해 바꾸는 신생 기업이 등장해왔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해 노키아가 지배하던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바꾼 사례를 예로 들었다.
기존에는 미국 기술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며 AI 시장을 주도해왔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제한된 자원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바버 부사장은 AI 모델이 초기 성장 단계를 지나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딥시크처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봤다. 딥시크가 장기적으로 AI 시장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이로 인해 기업들이 갑자기 AI 투자를 줄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버 부사장은 2024년이 ‘AI 투자의 해’였다면 2025년은 ‘AI 실행의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많은 AI 모델들이 여전히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AI 모델의 성숙화가 진행돼야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와 가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AI 에이전트(비서서)’가 좀 더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트너는 ‘하이프 사이클’ 모델을 통해 신기술의 성숙 과정을 5단계(기술 촉발→부풀려진 기대의 정점→환멸의 골짜기→계몽→생산성 안정)로 구분하고 있다. 가트너는 생성형 AI가 지난해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을 지나 기대감이 꺾이는 ‘환멸의 골짜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 기업들은 과대광고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대응한다.
바버 부사장은 “AI 분야의 특징은 기대치는 점점 낮아지지만 투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2027~2028년쯤에는 AI가 일상에서 보다 흔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선 “강력한 기술력과 세계적인 수준의 하드웨어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AI 시대에 번성할 잠재력이 크다”며 “특히 에너지, 반도체, 클라우드 공급자의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평했다.
이미 글로벌 기술기업들이 선점한 거대언어모델(LLM) 개발보다는 기존 LLM을 활용해 혁신을 모색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바버 부사장의 판단이다. 그는 “워낙 막대한 투자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LLM을 만들어 시장의 강자가 되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카카오와 오픈AI가 AI 서비스 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점을 언급하며 “파트너십을 통해 수익화를 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바버 부사장은 “남들이 투자한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AI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