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들은 뭐지? 왜 이렇게 많이 따라붙는 거야. 베트남 사파. 그 유명한 계단식 논을 감상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친한 형과 둘이서 몽족 출신 가이드를 따라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4명의 몽족 여인이 따라온다. 등에 뭔가를 가득 넣은 바구니를 이고서. 느낌이 확 온다. 순간 경계심이 가득해진다. 낚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경계심 때문에 아름다운 다랑논을 마음껏 감상할 수가 없다. 인간이 그린 멋진 풍경화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저리 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1시간 정도 걸었지만 한번도 물건을 사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네들끼리 깔깔 낄낄 뭐가 좋은지 수다만 떤다. 다소 경계심이 누그러진다.
그제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와 인간의 손길이 만들어낸 장엄한 풍경. 산비탈에 새겨진 숭고한 인간의 노동, 이를 더 빛나게 하는 구름과 하늘, 그리고 산들.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순간, 몽족 여인이 말을 건다. 물건을 사달라고. 이제 자신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2시간 넘게 함께 걸어온 동료의식이랄까 뭐 이런 게 막 작동한다. 이들이 노린 것도 바로 이런 걸 거다. 같이 걸어왔으니까 하나 정도 사줄 거라고. 미안한 마음에 흥정을 한다. 동행한 형은 흔쾌히 사준다. 4명의 몽족 여인 모두에게. 이 또한 여행의 재미가 아니겠느냐고. 별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산다. 나 참. 저 형 마음도 참 좋다. 덩달아 나도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다음부터 트레킹을 하며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경계를 풀고 받아들이니 마음의 눈이 더 밝아진다. 낮선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다랑논이며 집들, 그리고 강아지와 아이들까지 새록새록 아름답게 새겨진다.
그다음 날 아침, 쌀국수를 먹는다. 앗, 고수다. 이거 냄새가 지독하잖아. 베트남 음식은 다 좋은데 고수라는 채소가 늘 말썽이다. 그래서 잔뜩 경계하며 항상 빼고 먹었다. 벌써 베트남 여행이 세번짼데 고수는 당연히 피해야 할 것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그냥 먹어보고 싶다. 진짜 베트남 쌀국수는 어떤 맛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왜 고수를 넣어 먹는지 궁금했다.
먼저 쌀국수를 한입 한 후 고수 잎사귀 하나를 조심히 먹어본다. 어? 나름 괜찮은데. 그럼 이번에는 한줄기를 먹어본다. 오호 먹을 만하네. 아니 맛있네. 코를 찌르는 고수의 향과 묵직한 국물, 부드러운 면발과 쫄깃한 고기가 뒤섞이며 그동안 맛보지 못한 베트남 쌀국수의 맛을 알게 된다. 와 이게 원조 쌀국수의 맛이구나. 고수에 대한 경계를 풀고 받아들이니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베트남 음식의 맛과 멋을 보게 된다.
그렇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우리 주변에 늘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경계한다. 익숙하고 편한 것만을 찾기 쉽다. 그런데 살다보면 낯선 것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생긴다. 여행이 그렇고 일상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 처음 해보는 일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을 경계심만 가지고 멀리한다면 우리 삶에서 놓치는 게 많을 것이다. 경계심을 풀고 받아들이면 일상이 풍요로워진다. 낯섦이 새로움으로 바뀌고, 새로움은 즐거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경계심을 풀고 새로움과 즐거움이 풍성해지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삶이 행복한 소통의 연속이 되도록 만들어야겠다.어디 고수 파는 데 없나?
김혁조 강원대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