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에 오사카와 도쿄에서 여러 차례 공연했고, 이를 전후해 대통령이 방일하는 등 외교적 의미도 있었다. 한·일 예술가끼리 대화도 많았는데 돌아보니 그게 문화교류였다.”
지난 14일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행사장에서 만난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보유자 신영희씨의 회고다. 국가유산진흥원이 마련한 300석 무대에서 채상묵 승무 보유자, 이재화 거문고 산조 보유자 등과 함께 공연한 직후였다. 한·일 수교 60주년인 올해 엑스포 ‘한국 주간’에 맞춰 기획된 행사에서 이들은 즉흥에 가까운 합동공연을 선보이는 등 반백년 갈고닦은 흥취를 뽐냈다.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던 시기에 교포 위문공연을 다녔다”고 하는 이들에게서 숨 가쁘게 변해 온 한국의 정치·경제·문화 위상을 실감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획상품 전시장에 선보인 파스텔톤 백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등에서도 읽힌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전통 유산을 활용해 내놓은 이 상품들은 ‘뮷즈(뮤지엄+굿즈)’라는 브랜드를 달고 지난해 매출 약 213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과 비교해 5년 새 465.9%나 증가한 건 ‘RM 효과’로만 설명될 수 없다.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외에도 ‘청자 자수 파우치’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해외 시장까지 벼르고 있다. 이들 뮷즈는 오는 11월 미국 내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 때 총 38종이 현지 박물관에서 판매되고 일본 나라국립박물관과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도 입점 추진 중이다. 오사카 현지에서 만난 정용석 재단 대표는 “해외의 K컬처에 대한 관심을 K헤리티지까지 넓히기 위한 매력적인 교두보”라고 했다.
젊은 세대나 외국인들이 한국 전통 공연·유물 그 자체에 처음부터 끌리는 건 아니다. 뮷즈 부스에서 청화백자 키링을 보던 일본 여성 코노는 “예쁜 물건들이 있어 들어와 보니 한국 전통 것이라고 해 둘러보는 중”이라고 했다. ‘K’라서가 아니라 감각이 먼저 반응한단 얘기다. 명인들 공연장에서 만난 미국 여성 엘라도 “컬러풀, 원더풀하고 흥미로웠다”고 했다. 컬러풀·원더풀은 공연 내용뿐 아니라 이들의 세련된 한복, 무대 배경을 장식한 최첨단 디지털 영상미와도 관련된다. ‘궁캉스’(궁궐에서 즐기는 바캉스)의 인기에 ‘왕족 체험’이라는 인스타 욕망이 작용하듯, 의식과 허세가 어우러져 ‘힙 트래디션’을 빚어낸다.
“전통을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해서 반가사유상 캐릭터 상품 같은 걸 만들되 디자인과 품질에서 최고·최상을 추구한다. 힙하고 멋진 상품이야말로 유물의 가치를 드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재단의 김미경 상품기획팀장이 말했다. 제아무리 좋고 귀한 것이라도 시대에 외면당하면 그만이다. ‘힙’한 것이 팔리고, 팔려야 살아남는다. 전통을 이어받는 주역의 세대교체와 선순환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