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 타고 제 이름 찾는 ‘한식’

2025-11-20

얼마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K엑스포가 열렸는데, 내게 현장에서 한식 쿠킹쇼를 진행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 왔다. 행사장에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빔밥과 김밥, 겉절이나 화채 같은 한국의 일상 속 음식을 만들고 그 과정에 대한 설명과 시식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비록 국내 매체에서 유럽의 레시피를 주로 소개하지만, 나라고 한식에 대한 애착이 없을 리 없기에 큰 고민 없이 일을 맡았다.

엑스포에서는 K푸드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K팝은 물론이고 한국의 드라마·영화·게임·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산업을 유럽에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시관에서 이뤄진 행사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는데, 아이돌 가수가 몇팀 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줄까지 서가며 한국의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유심히 살피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이미지가 더는 내가 유학을 하던 시절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대 초, 유럽 지역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며 적지 않은 추억과 경험을 지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2004년에는 어학연수를 위해 마드리드의 한 대학에 다니며 생활한 적도 있었기에 한국 행사장의 열띤 분위기는 더욱더 낯설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때였지만 외로움 역시 존재했다. 그것은 관계보다는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동북아시아 국가는 한국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이었고, 오히려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인지도가 훨씬 높았다. 왕왕 한국을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분단국가로서 남과 북의 ‘휴전’ 상황을 궁금해하는 경우가 고작이었다. 당시 나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문화를 배워가고 있었지만, 내가 가진 문화의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랬던 시절이 무색하게 어느덧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 줄을 서고 있었다.

문화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한국의 가요부터 영화·드라마와 웹툰까지 전 세계에서 유례없던 인기를 누리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시장 속 아이돌과 배우, 작가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까지 덩달아 관심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실제 한국행으로까지 이어지는 듯, 내가 장사를 하는 서울 종로의 서촌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의 움직임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스마트폰 너머 바라보았던 장소를 직접 다니며 거리의 공기를 느끼고, 현지의 음식을 맛보며 경험한 것을 추억과 이야기로 남기며 한국 문화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한다. 그렇게 외국 요리방송에서 낯선 재료에 불과했던 ‘한국의 발효된 빨간 고추 반죽’은 고추장으로 돌아왔고, OTT를 통해 방영된 한국 배경의 어느 애니메이션 덕에 ‘스시’나 ‘마키’ 같은 일본 단어를 빌려 설명하던 김밥은 드디어 ‘김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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