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말인지 알지?!’ 악순환 언제까지

2024-10-15

“동수야, 나 성냥팔이 소녀 도와주는 게 소원이야. 네가 성냥팔이 소녀 해줘. 뭔 말인지 알지?”(정태). “아, 뭔 말인지 알겠다! 그 불쌍한…”(동수). “그래, 완전히 불쌍한…. 뭔 말인지 알지?”(정태). “뭔 말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이렇게 두건 쓰고 막 추워하는 애”(동수). “그래, 뭔 말인지 알겠지? 두건 여기 있어. 얼른 소녀 역할 해봐”(정태). “그래, 뭔 말인지 알겠다! 음, 감기 조심하세요! 에취”(동수). “그건 감기약 소녀잖아, 아, 혈압 올라. 내가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죽는다”(정태).

한때 꽤 인기를 끌었던 TV 개그 프로그램 코너 ‘뭔 말인지 알지?!’의 일부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는 정태와 동수, 두 청년이 서로 ‘뭔 말인지 알지’를 연신 외치며 의사소통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동수는 번번이 동문서답만 되풀이하고, 참다못한 정태는 끝내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한다.

정태는 ‘성냥팔이 소녀’라는 말을 분명히 했고, 동수는 그 말을 틀림없이 들었다. 말소리 자체는 제대로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소통에는 실패했다. 본래 의미는 전달되는 게 아니라 공유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 ‘communicare’다. 이 말은 ‘공유한다’ 또는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원래 의미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보다는 어떠한 경험을 함께한다는 뜻이다”(김주환, 『회복탄력성』).

혼사(婚事) 얘기하는데 상사(喪事) 말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정태와 동수의 엇박자에 좌중이 폭소를 연발한 것도 그저 남 일 같지 않은 데자뷔를 느꼈기 때문일 터이다. 언뜻 기억 회로를 더듬어봐도 엔간한 술상 머리에서 ‘뭔 말인지 알지?”는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들곤 한다. 그러나 매번 공허한 메아리가 돼 흩어질 뿐 도무지 뭔 말인지 알 턱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미의 공유는 생각처럼 그렇게 쉽사리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의 과학기술자 장영실(최민식 분)과 세종대왕(한석규 분)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마지막 장면은 소통의 정수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자네 눈에는 뭐가 보이나, 영실이?”(한석규). “전하의 나라가 보이옵니다”(최민식). “영실이, 자네가 고생이 많았네”(한석규). 못다 이룬 꿈에 대한 회한을 토로한 두 사람,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으로만 소통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자 심심상인(心心相印)의 경지다. 사상과 신념, 가치관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이해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다.

무릇 소통의 성공을 위한 의미 공유 단계로 나아가려면 상호 신뢰와 이해가 필수 전제 조건이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일체의 지각된 현실은 해석되거나 재구성된 산물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양쪽 사이에 굳은 믿음과 공감이 터 잡고 있지 않으면 각자가 발신하는 신호는 더 크게 뒤틀리거나 왜곡돼 상대의 뇌리에 꽂힌다. 이런 상태에서 의미의 공통분모를 찾아낸다는 건 참으로 난해한 일이다.

‘윤·한 만남’이 뉴스 되는 비정상

불신 해소 없이 소통 성공 어려워

‘빈손’ 모면하려면 신뢰 회복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다음 주 초에 만난다고 한다. 독대하니 마니, 제삼자가 배석하느니 마느니를 놓고 티격태격하던 게 불과 스무날 여 전이다. 두 사람 사이의 불신과 갈등의 골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국민 앞에 여실히 보여줬다. 한 대표가 뒤돌아서서 딴소리할까 봐 대통령실이 독대를 꺼렸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가뜩이나 싸늘한 민심은 허탈함을 넘어 냉소적 반응을 보일 정도로 악화일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회동’이라는 당연지사(當然之事)가 뉴스가 되는, 한술 더 떠 “그런데 왜 인제야….” 하는 뜨악함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얼굴을 마주할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정치적 속셈만 떠볼 요량이 아니라면 불신의 벽을 어떻게든 허무는 특단의 신뢰회복 조치부터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시중에 소문이 파다한 ‘김건희 라인’의 존재와 ‘면담이냐 독대냐’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볼썽사납다. 자칫 일각의 ‘빈손 회동’ 우려가 현실화하는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

정태와 동수의 바보 놀음은 한바탕 웃고 넘기면 되는, 말 그대로 희극일 뿐이다. 그러나 불통의 국정과 민심의 이반을 보고 그런 여유를 부리기엔 서민·자영업자, 나라 안팎의 사정이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게 없다. 곧 매서운 한파가 닥쳐온다. 이젠 서로 뭔 말인지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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